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
1995년 3월 말 이재현 CJ그룹 회장(당시 제일제당 상무)은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당시 제일제당 이사)에게 미국 로스엔젤레스(LA)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디즈니 만화영화를 총지휘했던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업계의 거장 데이비드 게펜이 함께 만든 ‘드림웍스SKG’에 대한 투자 계약을 성사시키러 떠나는 길이었다.
이어 드림웍스SKG를 통해 콘텐츠 제작 및 유통 역량을 키운 뒤 궁극적으로는 우리 정서에 맞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겠다는 꿈, 멀티플렉스를 통해 영화 관람 문화를 바꾸겠다는 꿈, 문화 상품을 앞세워 세계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털어놓았다.
제일제당의 드림웍스SKG 투자는 CJ그룹이 식품 회사라는 오랜 틀을 벗어 던지고 문화창조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창조적 사업 다각화의 초석이 됐다.
이 회장은 제일제당 내에 멀티미디어 사업부를 신설, 자신의 꿈을 실현할 문화사업의 밑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97년 뮤직네트워크(Mnet) 인수를 시작으로 98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인 CGV강변 오픈, 2000년 영화 투자 배급사린 CJ엔터테인먼트 설립 및 CJ헬로비전의 모태가 된 인천방송 인수, 2002년 CJ미디어 설립, 2003년 CJ인터넷(넷마블) 설립, 2009년 온미디어 인수에 이어 2011년 CJ E&M을 출범시켰다.
여러 차례 위기도 있었다. 특히 지난 95년 드림웍스SKG 투자 때는 내부 반발이 심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직후인 데다 식품 회사에 불과했던 제일제당이 영화 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드림웍스SKG 투자액은 3억 달러(당시 한화 3500억원)로 회사 전체 자산(1조 원)의 23%에 달했다.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거액이었던 것이다. 이런 큰 돈을 경험도 없는 전혀 생소한 사업에 투자한다는 데 대해 내부 동요가 있었던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한민국과 CJ그룹의 성장을 견인할 미래동력은 결국 문화 산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0년 뒤 CJ그룹은 문화로 일어섰다. 보통 사람들의 성공신화를 보여준 ‘슈퍼스타K’ 열풍에 이어 드라마 ‘응답하라 1997’로 케이블 드라마 전성시대를 열었다. 국내 영화산업에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17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도 CJ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회장은 2010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센터 개관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쉬운 길 대신 10년 이상 적자를 감수하면서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은 ‘문화 없이는 나라가 없다’는 할아버지(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문화를 산업화 하겠다’는 나의 이미지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세계적으로 제조업 주도권이 중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지만 CJ E&M은 ‘끼’와 ‘열정’으로 뭉친 젊은이들이 많은 우리나라가 향후 최소 20년은 중국보다 앞설 수 있는 산업”이라며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큰 수익을 창출하여 국가경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호암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을 ‘문화보국’으로 발전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