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현대인들이여! 매일 키스 하십시오.”
2009년 5월 13일,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현정은 회장이 보낸 이메일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저와 매일 ‘키스(KISS, Keep It Simple & Speedy’ 합시다”라는 문구까지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단순하고(Simple)’ ‘신속하게(Speedy)’ 일하자는 메시지였다.
현 회장은 또 “현대그룹은 경쟁자보다 한 걸음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국내 최초로 운항한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선, 세계 최고 높이의 현대엘리베이터 테스트타워 등이 가능했다”며 ‘속도(Speedy)’ 경영을 강조했다.
현 회장은 2003년 남편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그가 경영일선에 나섰을 때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30년 동안 살림만 했던 현 회장이 대기업을 잘 경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 회장은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도 섬세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영업을 최우선시하는 ‘SSI(Super Sales Initiative)’를 추진해 ‘영업의 현대’를 만들었고, 전사적 비용 절감 캠페인 ‘TCR(Total Cost Reduction)’을 전개하는 등 내실을 다졌다. 자신을 둘러싼 우려에는 결과로 답했다. 2003년 현 회장 취임 당시 현대그룹 자산은 8조 원에 불과했지만 10년이 지난 2013년 30조원으로 급증했다. 매출도 같은 기간 5조 원에서 12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유동성 위기를 맞았던 2013년 말에는 치열한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을 재건했다.
여성 특유의 포용력 있는 현 회장의 리더십은 국내외 유력 단체로부터 높게 인정받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가 발표한 ‘2011년 세계50대 여성기업인’에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선정된 바 있으며,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2008년과 2009년 연속으로 뽑힌 바 있다.
현 회장은 시아버지인 아산의 유지를 받들어 통일을 위한 대북 사업에도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2009년 현대아산 직원 억류 사건으로 대북 사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 2박 3일 일정으로 방북 길에 올라 다섯 차례나 체류 일정을 연장시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성사시켰고, 직원을 무사히 귀국시켜 여장부다운 모습을 보였다.
2014년 말 현 회장은 현대그룹 임직원들과 출입기자에게 이메일로 송년 카드를 보냈다.
카드에는 “지치고 힘든 어두운 밤이 지나면 어느덧 새벽이 찾아오듯 그렇게 새벽은 우리에게 올 것”이라며 7년 째 중단된 대북 사업의 재개를 희망했다. 그는 “새벽은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며 “그때를 위해 현대그룹은 항상 깨어 있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현 회장 특유의 ‘긍정 리더십’을 드러내는 말로, 수 차례 위기를 극복한 현대의 저력을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