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김승연 “마취 없이 폐를 잘라내는 게요”

2016-04-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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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67)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사진=한화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뼈를 깎는 것이 아니라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갈비를 들어내고 폐를 잘라내는 기분이었다.”

지난 1999년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자단 세미나에 참석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마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맞아 정부 주도로 초진한 구조조정에 맞춰 그룹의 체질을 개선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김 회장은 매각·합작·전략적 제휴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1년 사이에 그룹 부채비율을 960%포인트나 낮추는 동안 김 회장의 체중은 8kg이나 줄었다.
김 회장은 창업자이자 아버지인 현암(玄巖) 김종희 회장의 뒤를 이어 1981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회장에 취임했다. 창업자가 화약사업을 모태로 관련 계열사를 설립해 나갔다면, 김 회장은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워나갔다.

김 회장이 처음 인수한 기업은 1982년 한국다우케미칼과 한양화학이었다. 당시 2차 석유파동으로 글로벌 석유화학 경기가 위축되면서 두 회사는 상당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김 회장은 강행했다. 1984년 한양화학지주와 양사를 합병해 ‘한양화학’으로 출범시켰고, 2010년 ‘한화케미칼’로 사명을 바꿨다. 인수 당시 매출 1620억 원이었던 한화케미칼은 2015년 8조 원대의 그룹 주력 계열사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그를 ‘다이너마이트 킴 주니어’라고 불렀다.

성공만 거뒀던 것은 아니다.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인에너지를 매각하고 정유 사업에서 손을 떼야했다. 이에 못지않게 김 회장에게 뼈아픈 고통을 가져다준 것은 그룹 인력 25%를 줄여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구조조정으로 6000여 명의 직원이 떠났지만 노사 분규는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공정한 인사는 없을 것”이라는 김 회장의 고용 보장 약속을 노조가 믿어준 덕분이었다. 일부 언론이 ‘회장 사퇴’라는 오보를 내자 직원들이 ‘회장 사퇴 불가’라는 연판장을 돌리며 그를 지원했다.

김 회장은 “청춘을 바쳐 20~30년간 근무해온 많은 직원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 자신들이 희생하더라도 회사가 살아야 한다는 애사심을 발휘해주었을 때는 정말 눈물겹고 감동적이었다. 평생 마음의 빚으로 가져가겠다”고 다짐했다.

마취 없이 살을 도려내는 듯, 혹독한 그룹의 대수술을 마친 김 회장은 이후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2002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인수해 금융 부문으로 역량을 확장하며 재계 서열 10위에 올라섰다. 2010년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한화솔라원)를, 2012년에는 독일 큐셀(현 한화큐셀)을 인수하며 태양광 셀 부문 세계 1위로 키웠다. 2014년에는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등 삼성그룹 4개 계열사를 인수, 정유사업에 재진출했다. 2016년에는 두산 DST를 인수함으로써 방산부문에서도 국내 최대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이를 통해 한화그룹은 재계 서열 8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5년 김 회장은 ‘스피드 경영론’을 내놓았다.

그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다”면서 탁상공론만 하느라 어렵게 찾아온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수익성을 판단하되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스피드 경영론은 ‘오너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인 빠른 의사결정과 일사불란함이 더해져 한화그룹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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