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우리의 외교안보가 중대한 갈림길에 선 가운데 현 정세에 대한 분석과 진단, 외교적 대응과 남북관계 전망을 전문가로부터 듣고 싶었다.
통일안보 분야의 최고 민간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을 찾은 이유다. 그와의 대담은 지난 2월 24일 경기도 성남의 세종연구소에서 주진 본지 정치부 차장과 이뤄졌다.
특히 정 실장은 이를 위해 더 이상 미국의 핵우산과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보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핵무장론’을 의식한 듯 “내 주장은 안보와 대화를 병행한 ‘중도적 핵무장론’으로 보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은 뒤 “모든 걸 대화와 협상으로 풀려는 것은 이상주의다. 외교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박근혜정부는 최악의 선택만 하고 있다. 그건 중국과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방증”이라며 “그러니 외교안보전략이 냉온탕을 오가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사드 배치 논란으로 한반도가 미-중 패권 각축장이 되고 있다. 우리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 크다.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사드로 대응하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한국이 갖게 될 안보상의 이익은 제한적인 반면, 외교·안보·경제적 손실은 매우 심각하다. 박근혜정부는 최악의 선택만 하고 있어 대한민국의 미래가 우려된다.
우선 대북 제재와 관련 중·러의 적극적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한중·한러 관계 악화도 불가피해진다. 특히 사드 배치로 중국이 경제보복을 가해온다면 우리의 전체 교역 4분의 1을 차지하는 한중 경제 협력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현정부 외교안보 라인은 중국과 북한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외교안보전략이 냉온탕을 오가는 것이다. 이제라도 사드 배치를 재고하고, 한·미·중 3자 협의를 추진해 중국의 안보상의 우려를 해소시켜야 할 것이다. 3자 협의를 하기 되면 미국은 사드를 배치하더라도 레이더망을 한반도로만 국한하고, 중국과 러시아에까지는 미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할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붙었다간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될 수 있다. 미중 사이에서 일정한 균형을 추구하는 자주외교, 실리외교를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북핵 해법에 대해서도 이견차가 뚜렷하다. 특히 중국은 북핵 일괄타결을 위해 평화협정 논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북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데?
“북한의 핵·장거리 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일과 중국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미·일은 북한의 핵이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은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위해 핵개발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미국을 압박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해야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은 뒤로 밀려있고 세계 초강대국이 북한에 양보까지 하면서 타결을 이끌어내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 박근혜정부가 역대 최상의 관계라고 자부했던 한중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전폭적인 협조가 없으면 대북제재 실효성도 담보할 수 없다.
“중국이 쌀·옥수수 등 곡물 전면 중단 조치를 내렸다는 것은 북한이 고통을 느끼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무언의 압력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대해 미지근한 동참과 수위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실제 행동과 조치에 있어서는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는 속성을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중국이 북한과의 밀무역에 대해서는 통관과 여러 절차에서 법으로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지는 않다. 북·중간 밀무역만 법적으로 엄격히 단속해도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우리가 대북제재에 대해 중국에 ‘책임론’을 얘기하면서 ‘역할론’를 동시에 기대하는 대중정책은 실효성 측면에서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에 대응하는 안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외교력도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 단기적 시각에서 사드 도입으로 중국을 압박하기보다는 북한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안을 중장기적 시각의 대응이 필요하다.“
◆ 남북간 군사적 균형과 실리외교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독자 핵무장론'을 주장해왔다. 그 이유는?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비핵화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이 명확히 확인됐다. 북한은 첫 핵실험 후 9년이 지났기 때문에 수년 내에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처럼 제재 위주의 정책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변화가 있을 것이란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우리도 핵보유를 검토하는 등 다른 전향적 방법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면 빠르면 10~18개월이면 핵무장이 가능하다. 예산은 1조원 정도 든다. 사드 1대 배치에 1조원이 드는데, 사드보다 북한에 더 위협이 될 수 있는 핵무장을 하면 저비용 고효율 대북 압박 효과가 크지 않겠나. 북한에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초빙연구원은 오는 2020년 적어도 북한은 핵무기를 최소 20기, 최대 100기까지 보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간 시나리오로는 50기 정도가 예상된다. 북한의 수소폭탄 보유도 예측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아무리 재래식 첨단 무기를 갖는다 해도 핵 위력과는 비교가 안된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사실상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핵도 포기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아울러 남북한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군사적 균형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문제 등 국제사회의 제재도 예상되고, 특히 동북아 지형 속에서 미국이나 중국이 이를 용인할지가 의문이다.
"NPT 제10조 1항은 회원국이 비상사태 시 조약 탈퇴 권리를 인정하고 있어 북한이 수소폭탄을 가지고 제5차 핵실험을 할 경우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다. 일각에선 우리가 핵 무장하면 한미동맹이 깨질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그건 지나친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 본다. 핵무장을 해도 미국이 한·미동맹을 파기할 수도 없고, 안보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국익 차원에서 핵무장이 옳다면 미국을 설득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만에 하나 핵무장 때문에 미국이 우리와 동맹을 깨겠다고 하면 ‘우리는 원치 않지만 그렇게 하라’고 큰소리 칠 필요도 있다. 3~5년 내 주한미군도 철수해달라고 요구하면 미국도 당황할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대중견제가 중요한 미국에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 비용도 줄일 수 있다. 2014년 우리는 78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한 무기 수입국 1위였다. 이 중 70억 달러가 미국산 무기였다. 옆집에서 우산을 빌려오면 어떤 형태로든지 갚아야 한다.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80~90%로 높다. 한미동맹이 깨지게 되면 당장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우리도 나름대로 미국에 지렛대가 있는 셈이다. 국제사회의 반발이 두려워 자위적 핵 억지력 확보를 포기하면서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할수록 우리는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들의 장기판에서 ‘졸’로 전락할 수도 있다. 먼저 핵무장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정당방위 성격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명분을 축적하고 국제사회에 인식시켜야 한다. 외교를 통해 세계 여론을 움직이고 호소해야 한다."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북한이 앞으로 5차 핵실험도 강행할 텐데 박 대통령은 ‘5차 핵실험을 하면 NPT 탈퇴는 물론 핵무장까지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해야 한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의 핵무장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북한은 상당히 혼란에 빠질 것이다. 주민들로부터 김정은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 내기도 어렵다. 반대로 핵무기가 없다면 재래식 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없다. 다음 수순은 국민투표로 핵무장 찬반 여부를 묻고, NPT를 탈퇴해 핵무장으로 가야 한다. 우리 기술이면 핵실험도 필요가 없다."
◆ 박근혜정부 임기 내에 남북관계 개선은 거의 희박해보인다. 현 정부가 대북기조 새판짜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조언을 한다면?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남북 간 유일한 협력공간인 개성공단을 폐쇄, 남북관계를 완전히 냉전시대로 회귀시켰다. 대북정책이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물론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은 현정부 임기 내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단 1달러도 북한에 들어가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박근혜정부의 제재 방침이니 남한과의 관계에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하는 북한이 협조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대화 재개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대화론자이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이른바 햇볕정책‘을 폈지만, 두 정부 모두 임기 내내 단기적 성과와 대응에만 접근한 결과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중장기적인 전략 속에 로드맵을 차근차근 밟아갔어야 했다. 이는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다.”
[대담 = 주진 정치부 차장. 정리=강정숙 통일부 기자]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1986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1988년 파리제10대학교 정치학 석사 ▲1996년 파리제10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겸 통일전략연구실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KBS 객원해설위원 ▲합동참모본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