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된 한국영화기자협회 주최 오픈토크 ‘더 보이는 인터뷰’에 참석한 전도연의 말이다.
스크린 데뷔작 ‘접속’(1997)을 시작으로 아시아 배우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밀양’(2007)을 거쳐 가장 최근 작품인 ‘협녀, 칼의 기억’까지 배우 전도연의 캐릭터는 언제나 사랑으로 인해 움직였다. 한국 멜로의 여왕, 전도연이 영화 ‘남과 여’(감독 이윤기)로 돌아온다. 제목에서도 티가 나듯, 멜로 영화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을 가진 남자, 기홍(공유)과 자폐증에 걸린 아들을 키우는 여자, 상민(전도연)은 핀란드 국제학교 캠프에서 만나자마자 서로의 고됨을 단박에 알아본다. 그래서일까? 낯선 땅에서 스친 찰나의 인연은 서울이라는 일상의 공간까지 파고들어 헤집는다. 찬 설원에서 펼쳐지는 뜨거운 사랑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만도 한데, 전도연은 여자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연기해내며 기어코 현실의 이야기로 전달한다.
파트너는 배우 공유다. 둘은 공유의 스크린 데뷔작인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부터 알던 사이로, 소속사 싸이더스HQ와 매니지먼트 숲 등을 거치며 수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사람들이 공유랑 저랑 나이 차이가 엄청나게 많이 나는 줄 알아요, 그건 아닌데 말이에요. 호호.(실제로 전도연은 공유보다 7살 많다) 어쨌든 공유를 너무 어릴 때 만나서 세월이 흘러도 항상 애 같이 느껴져요. 내가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유도 아니까 제게 멜로적 영감을 못 줄까 봐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도 사실 그게 제일 걱정이었죠. 호호. 멜로라는 게 흉내만으로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근데, 공유가 노력한 건지 아니면 본연의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핀란드에서의 모습은 자상하고, 따듯하고, 남자답더라고요. 동생인데도 의지가 될 정도였죠. 핀란드에서 감정적으로 파라락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공유였어요.”
아들은 자폐증을 앓았지만, 디자이너라는 번듯한 직장도 있고, 남편은 정신과 의사인 데다 퍽 가정적이다. 아들을 국제학교 캠프에 보낼 만큼 경제적 여유도 있다. 상민이 다른 사랑을 찾을 만큼 절실한 결핍이 없다는 이야기다. 전도연은 상민을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고립된 사람”이라고 했다.
“상민은 아이의 결핍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어코 정상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어 집착하죠.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니까요. 정신과 의사인 남편은 그런 상민에게 전혀 공감해주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보라고 하고요. 그런 상황이 상민을 정신적으로 고립시킨 거죠. 사실 (이 단어를 제 입으로 내뱉는 것이 불편하지만) 불륜이라는 것이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어서 다른 사람을 찾아야 통속적이고, 익숙하죠. 저에게도요. 하지만 그렇다면 둘의 사랑이 진심이 아닌 도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결핍 없이, 오롯이 둘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진짜 사랑 아닐까요?”
‘남과 여’ 촬영 뒤 1년 넘게 연기를 쉬고 있는 전도연은 미국 법정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굿와이프’ 출연을 결정했다. 11년 만에 보는 전도연 주연 드라마인 데다 지상파 카르텔을 깨부순 tvN에서 방송된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업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당사자인 ‘칸의 여왕’은 11년이라는 세월에 살짝 긴장한 눈치다.
“무섭고 두려워요. 드라마 현장은 영화만큼 집중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감독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환경 좋아졌다고, 잠도 재워 준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래서 더 불안해요. 환경은 좋아졌는데, 제가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요.”
“‘굿와이프’가 멜로가 아니어서 출연을 결심했다”는 전도연은 “50, 60이 돼서도 멜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칸의 여왕, 멜로의 여왕, 눈물의 여왕…제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멜로의 여왕 타이틀은 정말 좋아요. 멜로라는 건 누군가에게 어떤 영감이나 설렘을 줄 수 있는 감성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