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20대 총선 연기론이 또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선거구획정을 둘러싼 여야의 협상이 쳇바퀴만 돌면서 사상 초유의 입법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어서다. 애초 여야는 재외국민 선거인명부 작성 직전인 오는 23일 본회의를 선거구 획정의 마지노선으로 잡았지만, 이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구획정과 관계없이 이달 24일 재외국민 선거인명부 작성을 개시하기로 했다.
◆쟁점법안에 발목 잡힌 선거구획정
21일 국회에 따르면 여야는 예정된 23일 본회의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각 상임위의 80여개 법안을 처리하고, 나머지 쟁점법안은 2월 마지막 날인 29일로 연기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전망은 밝지 않다. 선거구 획정의 각론 합의가 아닌 여야의 입법 공방에 선거구 획정이 발목 잡혔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미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 안에 합의했다. 합구·분구의 기준을 정하기 위한 인구산정 기준일 등이 협상 과제로 남았지만, 사실상 선거구획정은 합의된 상태나 다름없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선거구획정 평행선의 문제는 선거구 협상이 아닌 쟁점법안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현역 기득권 의원들이 쟁점 법안을 고리로 ‘선거구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현재 여야의 쟁점 법안은 선거구 획정과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 4법(이상 새누리당)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사회적경제기본법(이상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등이다.
문제는 상호 간 불신이다. 정치적 합의로 ‘선(先) 선거구획정’ 처리에 나설 수도 있지만, 여권 내부에선 이 경우 야당이 다른 법안 처리를 보이콧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더구나 여권 지도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 강경책을 전면에 꺼낸 이후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선결 과제로 내세웠다.
◆최대 변수는 테러방지법…사상초유 사태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테러방지법 처리와 관련해 “국민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며 “더 이상의 시간 끌기는 없어야 한다. 국민 안전과 국가 안위를 위해 테러방지법안 법제화에 협조하는 보다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야당의 판단을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더민주는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을 ‘반(反)민생’ 법안으로 규정하며 “시급한 선거구 획정보다 반민생법안들의 통과가 먼저라는 황당한 주장을 연일 펼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테러방지법은 평범한 국민들의 인권을 무차별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반민생법”이라며 “국가정보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면 그야말로 반민생 아니냐”고 힐난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난제다. 의료 부분의 서비스산업발전을 주장하는 새누리당과 이를 반대하는 더민주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2월 마지막 날인 29일 본회의까지 쟁점법안 합의에 실패한다면, 재외국민 선거 명부 작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총선 일정을 재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19일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달) 23일을 지나면 4·13 총선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29일 본회의에서 선거구획정 등의 일괄 처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더민주의 반대로 결과는 예단할 수 없는 상태다.
선거구 획정 지연이 헌법 제116조(균등기회 보장) 등 헌법상 원리인 ‘비례·평등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선 이후 대규모 선거무효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선거구획정만이 아니라 한국 정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