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은 최근 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제작 영화사 좋은날 디씨지 플러스·제공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 전 아주경제와 만났다.
굳이 따지자면 ‘로봇, 소리’의 악역을 맡은 그. 승진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만큼, 신진호의 가는 길 또한 명확하고 명쾌하다. 그는 해관의 흔적을 좇고 로봇, 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명확하고 명쾌하지만, 이는 캐릭터의 단순화로 느껴질 수도 있는 노릇. 이에 대해 이희준은 “아쉽지 않으면 거짓말”이라며 멋쩍게 웃는다.
“배우니까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당연히 있죠. 하지만 극 전체의 조화가 우선이기 때문에 신진호의 역할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하고자 했어요. 다만 제가 욕심을 냈던 건 신진호라는 인물을 스테레오 타입의 국정원 요원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제안했던 게 엄마와 통화하거나 문자 보내는 장면을 자꾸 넣자는 것이었어요. ‘신진호도 사람이구나’라는 게 이 인물이 가진 위트라고 볼 수 있죠. 캐릭터에게도 극 전체에도 위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이다. 신진호는 분명 해관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극의 코미디를 도맡고 있다. 이희준의 ‘계산’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인물에 대한 그의 풀이과정은 꽤 유쾌하고 촘촘했다.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신진호도 한 인간이라는 점이에요. 평범하다는 거죠. 거기에 ‘로봇, 소리’의 재미 상 해관이라는 인물과의 갈등을 더 심화해야 했고요. 안타고니스트로서 거만한 태도를 과장하는 게 해관에게도 도움을 줄 거라고 판단했죠.”
그의 말처럼 해관과 진호의 관계는 꽤 독특하다. 미묘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중간중간 허술한 태도로 웃음을 유발한다.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이희준은 단박에 “없다”고 한다.
“이성민 선배와 알고 지낸 지 17년 정도 됐어요. 연극을 하던 시절부터 함께했기 때문에 긴장감인 기 싸움이랄 것까지는 없었죠. 오히려 더 도와주시려고 하셨어요. 그냥 선배와 제가 경상도 남자들이다 보니 살가운 대화 같은 건 없지만요. 대신 이번 언론시사회를 마치고 낯간지러운 문자를 한 통 했어요.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죠. 선배에게 ‘형님의 첫 주연작을 함께하게 되어 기뻐요’라고 보냈는데 답장이 온 거예요. ‘나도 너와 함께해서 너무너무 좋아’라고요. 평소에는 오그라들어서 못하는 건데(웃음).”
존경하는 선배와 호흡을 맞추는 것은 물론 좋았지만, 곤란했던 경우 또한 있었다. 그는 “제외된 장면 중 이성민 선배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며 말문을 뗐다.
“그 신을 찍기 며칠 전부터 밥도 안 넘어가더라고요. 저도 (작품을 하면서) 많이 맞아봐서 알거든요. 잘 때리지 않으면 NG가 나는데 그게 더 피곤한 일이에요. 한 번에 끝내자는 마음으로 정확히, 세게 때렸죠. 한 번에요. 그런데 그 장면이 삭제됐어요(웃음). 아쉽기도 하지만 다 감독님의 뜻이 있겠죠.”
이희준은 인터뷰 내내 ‘조화’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연기하는 것이 극에 더 도움을 줄까”를 깊이 고민한다는 이희준은 “욕심이 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이 애드리브가 도움되는 건가? 나만 튀는 건 아닐까? 엄청나게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나만 튀고, 재밌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는 게 중요하죠. 어릴 때, 지인들이 제 연극을 보고 ‘너밖에 안 보이더라’고 해주면 그게 되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한 기분을 느꼈어요. 배우, 스태프, 작가가 몇 달을 같이 연습하는데 저밖에 보이지 않는다니. 서글픈 기분이 들더라고요. 함께 돋보이려고 노력했는데 ‘너만 보인다’는 말은 최악의 평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부족한 배우”라고 평하는 이희준. 그는 늘 “지금 재밌고 공감이 가는 작품”을 선택한다며 ‘로봇, 소리’ 역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저는 해관과 딸의 갈등이 정말 공감이 가더라고요. 음악을 하고 싶은 딸과 반대하는 해관의 대화가 꼭 저와 아버지 같았어요. 저도 21살에 연극을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놨고 아버지는 ‘장남이 어쩜 이렇게 이기적이냐’며 화를 내셨죠. 결국 전 가출했지만요(웃음). 소리라는 로봇이 딸의 꿈을 대신해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아가잖아요.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가게 해준다는 것. 그 자체에 뭉클함을 많이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