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은숙 기자 = 2016년 새해의 시작부터 중동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슬람 수니파 왕정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2일(이하 현재시간)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한 반체제 인사 47명을 집단처형했다. 이에 이란을 비롯한 시아파 국가들이 강력 반발했고 대규모 항의 시위가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중동 지역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우디가 처형한 인사들 대부분은 알카에다 테러와 연관된 수니파 조직원과 시아파 운동가이며, 이 중에는 시아파 고위 성직자인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도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보도했다. 님르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에서 10여년간 신학을 공부했으며 2011년 사우디 내 소수 시아파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정부는 "(처형된) 이들은 급진사상을 받아들여 기본 이념으로 테러 조직에 가입하고 다양한 범죄 음모를 꾸몄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사우디는 지난해 테러방지를 명목으로 개혁을 요구하거나 부패를 폭로하는 등 반정부적 행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 테러범으로 처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란뿐 아니라 주변 시아파 국가 및 조직에서도 사우디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시아파 정부가 통치하는 이라크는 지난해 25년 만에 사우디와 상대 수도에 대사관을 개설했지만, 대사관을 다시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는 성명을 발표해 "알님르 처형은 암살이자 추악한 범죄"라며 "사우디 체제를 보호하는 미국과 그 동맹들도 여기에 도덕적이고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이란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이 성난 이란인들의 공격을 받았다. 테헤란에서 사우디의 집단 처형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일부 군중이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하면서 건물에 불이 났으며 건물 일부가 파손됐다. 이란 제2도시 마슈하드의 사우디 총영사관 앞에서도 이란 시위대가 총영사관에 돌과 불붙은 물건을 던지고 사우디 국기를 찢었다.
파리 테러 이후 IS에 대한 전세계적인 연대가 강조되면서 수니-시아파 국가들이 협력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 처형과 대사관 공격으로 두 국가는 다시 긴장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CNN은 분석했다.
이번 상황에 대해 미국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이날 "종파 갈등이 감소해야 할 시기임에도 이번 처형으로 갈등이 악화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며 "사우디는 긴장 완화를 위해 모든 공동체 지도자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