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광연 기자 =레이쥔이 합류한 이후, 킹소프트는 중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89년 출시한 윈도우 플랫폼 기반 워드프로세서인 워드1.0조차 중국에서는 맥을 못 출 정도로 WPS의 입지는 탄탄했다. 그리고 레이쥔은 1992년부터 도스(DOS) 운영체제에서만 돌아가는 WPS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윈도우 기반인 ‘판구 오피스’ 개발에 돌입했다.
결과적으로, 판구 오피스는 레이쥔에게 처절한 실패를 안기며 ‘몰락’이라는 좌절을 맛보게 했다. 1995년 출시된 판구 오피스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목표(5000세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00세트 판매에 그쳤다.
도스 최강자였던 WPS의 우위를 윈도우 플랫폼으로 제대로 이식하지 못했다는 점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견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부분, 그리고 해적판의 난립이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1994년 워드4.0을 통해 불모지였던 중국을 제대로 공략하면서 레이쥔의 몰락을 재촉했다. 한 마디로 ‘완패’였다.
좌절은 레이쥔에서 큰 상처를 남겼다. 사표를 낼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레이쥔은 나중에 이때를 되돌아보며 ‘암흑과도 같았던 시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레이쥔 역시 ‘암흑’속에서 ‘빛’을 찾는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윈도우 워드프로세서의 한계를 느낀 레이쥔은 초보용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며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정하고 틈새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1997년 번역 프로그램 ‘진산츠바’로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1998년 10월 출시된 ‘진산츠바Ⅲ’는 중국 IT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레이쥔은 윈도우98 출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여줬던 대규모 마케팅을 모델로 삼아 2개월 동안 준비한 대규모 발표회 ‘가을밤의 호기’를 선보였다. 발표회 당일에만 3만 세트가 팔릴 정도로 화제를 낳은 ‘가을밤의 호기’는 완벽한 마케팅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마케팅 뿐 아니라, 레이쥔은 원가에 가까운 48위안이라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훗날 샤오미에서도 저력을 입증한 ‘저가 정책’의 시작인 셈이다. 이 정책은 후속모델 ‘진산츠바2000’까지 어어졌으며 100만번째로 팔린 모델이 국립도서관에 영구 보존될 정도로 ‘진산츠바 시리즈’는 맹위를 떨쳤다.
흥미로운 부분은 ‘진산츠바’로 역량을 비축한 레이쥔이 2002년 WPS를 다시 프로그래밍하며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재격돌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1994년 ‘완패’ 이후 8년만에 재도전에 나선 셈인데, 과거와는 달리 충분한 시간과 자금이 투입된 WPS는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를 누르고 정부구매시장 점유율 56%를 차지했으며 2005년에는 일본과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으로 발돋움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설욕이었다.
레이쥔은 2007년 킹소프트의 홍콩 증시 상장까지 마무리하고 홀연히 회사를 떠났다. 16년간 몸 담았던 킹소프트였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결국에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던 레이쥔은 “킹소프트는 하나의 산이고 나는 그 산을 오르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나가는 레이쥔의 발걸음은 ‘좁쌀’의 탄생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