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획-그레이트 코리아] 박세일 "통일은 운명이자 당위…저성장·양극화 극복 가장 빠른 지름길"

2015-12-14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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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겸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 인터뷰 <下>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은 지난 3일 서울 퇴계로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통일의 시대는 열렸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되지 않은) 통일의 기회는 곧 위기다. 새로운 분단의 시작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정리)=인터뷰 내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회 전반에 퍼진 '냉소적·자기 파괴적' 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취업과 결혼에 허덕이는 '2030세대'의 파편화된 삶부터 주거와 자녀교육 문제에 시달리는 '4050세대', 그리고 노후 빈곤에 처한 '고령층'까지….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겸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국가 재창조'를 주장했다. 한두 가지의 정책을 바꾸는 게 아닌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헌법가치'와 동양의 고전과 서양의 합리적 사상을 하나로 묶는 '홍익공동체 자유주의' 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합리적 보수주의자'인 박 상임고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통일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통일은 저성장 극복을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단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퇴계로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본지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간 강연과 저서 등을 통해 대한민국 개조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통일 대비 △포퓰리즘을 넘어선 민주주의 △저성장과 양극화를 돌파할 수 있는 자본주의 역동성 확보 △국가 공동체정신 회복 등을 꼽았다. 하나하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통일의 시대는 열렸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되지 않은) 통일의 기회는 곧 위기다. 새로운 분단의 시작일 수도 있다. 통일은 선택이 아니다. 민족의 사활이 걸린 당위이자 필수다. 그리고 운명이다. 남북 합의에 의한 통일이 가장 좋다. 그러나 급변 사태에 의한 통일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나. 첫 번째 과제는 급변 시 중국의 개입을 막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빠른 속도로 북한 내부의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꾀해야 한다. 북한 동포들과 군인들의 마음을 우리 쪽으로 돌려놔야 가능하지 않겠나. 현재 한국에 와 계신 2만8000여명의 탈북자와 50만명의 조선족 동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반성해야 한다. 마지막 과제는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해야 한다. 우리 힘만으로 안 된다. 미국과 유엔(UN)의 도움이 필요하다. 통일은 '댄스파티'가 아니다."

-통일은 당위이자 필수, 운명이라고 했다. 통일지향형 대북 정책의 필수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세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통일에 대한 국민과 지도자의 열정과 의지다. 삼국통일을 한 신라의 국방력은 고구려보다 약했다. 경제력은 백제가 좋았다. 하지만 신라만이 통일했다. 젊은 화랑도를 기르고 세속오계를 얘기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청년들에게 호국사상·애국사상을 확신시켰다. 두 번째, 북한 동포와 군인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통일외교의 강화다. 통일은 우리만이 아니라 당신들 나라에도 축복이라는 사실을 설득하는 것이 통일외교다. 그간 대북 정책과 관련해선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통일정책이 없었다'는 점이다. 통일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분단의 평화적 관리'가 주목적이었다. 단순한 현상유지 정책이다. 보수는 유엔 등의 압박을 통해서, 진보는 돈을 줘서 북한을 도발 못 하게 했다. 과거 대북 정책의 주 대상은 북한 동포가 아닌 북한 정권이었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설파하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공방을 일으켰다. 어떻게 생각하나.

"크기 기여했다. 우선 통일을 기회와 축복으로 규정했다. 국민들이 부담으로 봐야 하는지, 기회로 봐야 하는지 헷갈릴 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기회라고 규정, 통일을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통일에 대한 의지를 외국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미흡한 점도 있다. 첫 번째, 국민에게 '통일이 왜 대박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두 번째, '통일 대박을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할 테니까, 국민들은 어떠한 노력을 해달라'는 방향 제시도 없었다. 세 번째, 정부가 해외 언론이나 싱크탱크 등에 통일이 왜 이웃 나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지 설명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네 번째, 북한 동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강화했어야 했다."

-한국 정치가 위기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과 상통한다. 극한 진영논리에 따른 '묻지마 지지', '묻지마 비토' 등으로 한국 정치의 퇴행성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하나는 포퓰리즘, 즉 인기영합주의다. 다른 하나는 약체국가화 병이다. 포퓰리즘이 횡행하면 국가발전 등의 장기 목표보다 단기적인 대중인기에 영합한 정책을 양산한다. 정치인들은 공익이 아닌 사익을 좇는다. 국가의 장기 목표와 국민의 이익이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또 하나 문제는 국가 약체화가 심화되고 있다. '국가 능력', 즉 국가가 과제를 파악하고 풀 수 있는 능력, 즉 국가경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은 "통일은 운명이자 당위로, 저성장·양극화 극복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


-민주주의의 기초인 집단적 의사결정과 추진이 안 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민주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정부의 힘은 크게 약해진 반면, 국회와 시민단체와 이익집단의 힘은 크게 강해졌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정책능력은 높지만 국회와 시민단체의 정책능력은 약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과잉 민주화 과정에서 정책능력이 약한 곳의 힘이 강해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까 국가가 자기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역동성을 잃고 성장은 동력이 떨어지고 민생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국민들의 좌절감이 심화되는 것이다. 사회 전반이 냉소적·자기 파괴적이 경향까지 보인다."

-대한민국 경제는 어떠한가. 한쪽에선 '성장의 위기'를, 다른 한쪽에선 경제민주화 등 '분배의 위기'를 거론한다.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크게 세 가지다. '저성장'과 '양극화'와 '고령화'다. 지금 전 세계는 '공급 과잉·수요 부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선 새로운 비교우위 산업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거기에 걸맞은 경쟁력 확보도 중요하다. 수요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핵심은 통일이다. 통일은 북한 개발을 위한 새로운 투자기회와 소비기회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것이다. 통일은 저성장 극복을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사회 양극화 해소는 보수진영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린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은 극한 보혁 갈등으로 빠지기 일쑤다. '공동체 자유주의'가 본 양극화 해소 방안이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째는 양질의 고학력 양성을 위한 교육 개혁, 둘째는 세제 개혁과 재분배(복지) 정책, 셋째는 시장질서 개혁 등이 필요하다. 이 중 시장질서 개혁이 중요하다. 이것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시장의 독과점 구조, 특히 그중에서도 지금 시장에서 보이는 '끼리끼리' 유착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불공정한 경쟁은 경제활성화는 물론, 재분배 정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대·중소기업 관계를 시작으로, '법피아(법조+마피아)·관피아(관료+마피아)' 등을 타파한 뒤 공정한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다음은 고령화 즉 인구구조 문제다. 교육·노동·복지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21세기형 '뉴 사회정책'이 나와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한두 가지 정책 변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바꾸자는 거다. 문제는 기득권 타파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은 "민주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정부의 힘은 크게 약해진 반면, 국회와 시민단체와 이익집단의 힘은 크게 강해졌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정책능력은 높지만 국회와 시민단체의 정책능력은 약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과잉 민주화 과정에서 정책능력이 약한 곳의 힘이 강해진 셈"이라고 밝혔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 / [기사정리=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국가 공동체성 회복과 대한민국 개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공동체성은 해체되고 있다.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Hell과 신분사회 조선의 합성어)이란 말이 나오지 않나. 19세기 말 '동도서기'라는 말이 있었다. 옳았던 방향이다. 이게 다 깨졌다. 일제와 해방을 거치면서 근대화·서구화 과정에서 '동도'는 없어지고 '서구'만 들어왔다. 그런데 서구 제도만 들어왔지 서구의 정신적 가치는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없는 제도'와 '혼이 없는 발전'이 이뤄진 것이다. 동양정신의 전통도 없고 서양정신의 한국화도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정신 빈곤이 심하다. 우선 헌법가치 교육, 역사 정통성과 정당성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주체적 삶을 위해 동양의 고전과 서양의 합리적인 사상을 하나로 묶어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 자유주의'다. '홍익공동체 자유주의'라고 불러도 좋다. 그래야 통일도, 선진화 시대도 활짝 열 수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합리적 보수주의자가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교육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미래비전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과거 해석이 아닌 어떤 미래창조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얘기다. 조지 오웰의 1984에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를 부끄러워하면 자랑스러운 미래를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역사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역사교과서, 특히 현대사 교육은 '좌편향 민중사관'에 편향돼 있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친북 운동권적 역사관이다. 그래서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등을 부정한다. 건국을 한반도 분단으로 폄하하고 산업화를 외세 의존형 노동자 착취형 산업화로 보고 민주화도 민중이 주인인 세상을 못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한반도 분단을 누가 했느냐, 6·25를 누가 일으켰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이 사실상의 단독정부 수립 지령을 북한에 내린다. 그 이후 남쪽의 분열을 위해 형식적인 남북협상은 계속했지만, 분단은 이미 (그때)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1946년 2월께면 이미 독자의 군대를 가진 사실상의 정부 수립이 북측에 완료된다. 하지만 아직도 역사교과서는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분단의 시작으로 가르치고 있다. 분단의 책임을 남쪽에 민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좌편향의 민중사관·계급사관에 치우친 기술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의 다양성이 단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그 반대다. 검·인정 체제로 역사교육은 획일화됐다. 검·인정 집필진 36명 가운데 무려 31명이 전교조 출신이다. 이념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개별학교에서 검·인정 교과서 채택 여부는 역사교사들이 결정한다. 다수는 전교조적 사관을 가진 분들이다. 그리고 집필자는 출판사가 결정한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어떤 필자들을 선호하겠나. 당연히 전교조적 사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좌편향의 민중사관에 기초한 검·인정 교과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검·인정 체제가 다양한 역사교육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인 민중사관·계급사관을 주입하는 셈이다. 여기서 '통일된 자유주의적 균형사관'의 불가피성이 나오는 것이다. 넓고 깊은 식견을 가진 원로 역사학자를 모셔야 한다. 국사학뿐만이 아닌 정치학·경제학·국제정치학·사회학 등의 학자도 참여해야 한다. 초·중·고 역사교육은 학술적인 담론을 하는 곳이 아니다. 정파적이 아닌 균형된 그리고 통일된 국민적 역사이해와 역사상식을 합리적으로 정리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 정리=최신형 기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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