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탈북민에게 가장 시급한 건 '트라우마 치유"

2015-12-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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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녀 '새롭고 하나 된 조국을 위한 모임' 대표

새조위 신미녀대표 인터뷰. [사진= 김세구 기자 k39@aju]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왜 그 사람들을 욕하나, 껴안아주고 다독거려줘야지."

사단법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의 신미녀(55) 대표는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들의 사연마다 울먹거렸다. 그런 그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안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가 그에게 역전이 됐다는걸 2시간에 걸친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느정도 이해가 되자 그의 눈물은 곧 우리의 과제임을 깨달았다.
신 대표를 만난건 지난 4일 새조위 사무실에서다.

새조위는 6선 의원 출신인 홍사덕 민화협 상임의장이 1988년에 쓴 책 '나의 꿈 나의 도전: 새롭고 통일된 조국에의 길'을 계기로 모인 독자들이 홍 의장과 함께 설립했다.

현재는 신 대표를 비롯한 8명의 상근직 직원(의료상담사 4명 포함)이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17명의 상임이사와 22명의 자문위원도 새조위와 함께한다.

새조위 대표실은 북한학 박사인 그의 집무실 답게 방안 가득 빼곡히 들어찬 책들과 북한에서 만든 한반도 지도인 '조선행정구역도'가 눈에 띄었다.

탈북한 재미동포의 도움으로 구했다는 이 지도에는 한반도의 각 지명이 북한식 표기로 기술돼 있다. ‘자강도’(평안북도 일부), ‘량강도’(함경남도 일부) 등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행정구역도 북한식으로 자세히 쓰여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직원들이 탈북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신 대표의 말이다.

◆ "취업하는 것보다 병 치료가 시급해"

의료지원은 새조위의 핵심사업이다. 새조위가 처음부터 의료지원에 매달린 것은 아니다. 탈북민들이 남한에서의 정착을 위해선 취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신 대표는 탈북민 한명한명을 자신의 자가용에 태워 지방으로 면접보러 다닐 정도로 '열혈 탈북민 대모'였다.

그러나 면접 도중 중국에 있는 엄마로부터 온 전화받으러 뛰쳐나가는 탈북민 청년을 보고, 또 어렵게 취업이 되도 며칠 못가 일을 그만두는 탈북민 여성을 보고 문제의 근본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신 대표는 "그들(탈북민)에게 이유를 물을때 마다 '아프다'는 게 전부였다"며 "몸이 아파서도, 마음이 아파서도 이들은 이미 안고 있는 마음의 숙제와 몸의 숙제를 풀지 못한 상황에서 남한 생활 정착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탈북민 사회정착 지원을 돕는 하나원 조사결과 탈북민들의 유병율은 65%에 달한다.

북한 내에서의 영양 부족과 탈북과정에서 겪는 고강도 스트레스,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한 두번 북으로 송환 경험이 있다는 걸 감안했울때, 겪게되는 고문 등으로 인한 탈골, 제3국에서 겪었던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이들의 현재 삶 깊숙히 상처로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한국의 비싼 치료비와 의료 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 의료진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 대표는 "취업지원 일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의 명단을 300명 정도 갖고 있었고, 이들을 상대로 2005년 대한의사협회 무료진단사업을 서울 장에서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한두시간 만에 15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아픈 탈북민'의 문제를 제대로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후 2006년 국립중앙의료원의 도움으로 병원 내 북한이탈주민 의료지원센터를 두고 의료상담실 1호가 만들어졌다.

상담실에는 탈북민 출신으로 전문상담교육과정을 이수한 의료상담사가 근무한다. 탈북민들의 반응이 좋자 새조위는 충남대병원과 인천적십자병원, 서울의료원 등 3개 병원에 의료상담실을 더 개설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 서비스를 이용한 탈북민들은 지금까지 초진환자만 8000명, 진료건수는 8만건에 달한다. 현재까지 입국한 탈북민이 2만8000여 명 인것을 감안하면 3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신 대표는 "새조위의 북한이탈주민 의료지원센터는 특히 탈북민 환자들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며 "한국에 연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입원을 해도 찾아오는 이가 없고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 사실상 새조위 직원들이 가족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된 탈북민들이 심심할 때면 의료상담실에 모이면서 상담실은 자연스럽게 사랑방이 된다. 상태가 위중해 수술이 필요한 탈북민을 위해서는 상담사가 가족을 대신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기도 한다.

신 대표는 "의료지원 사업은 새조위가 자부심을 갖고 진행하는 사업"이라며 "최근에는 하버드대 연구진이 논문을 쓰는데 사례로 쓰겠다며 우리 의료지원센터를 취재해 가기도 했다"고 했다.

◆ 트라우마가 남한 정착에 걸림돌

'탈북민 코칭'으로 이름 붙인 교육상담 사업 역시 새조위의 주요 활동이다. 새조위는 2011년 '북한이탈주민 코칭센터'를 설립하고 탈북민들을 위한 상담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신 대표는 "현재 24명의 심리상담사들이 활동하고 있고 탈북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탈북민 코칭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내가 탈북자라서...'란 생각에 모든 부분에 위축돼 있는 탈북민들이 많다"며 "탈북한 순간부터 겪게되는 취조과정, 남한 정착후 느끼게 되는 열등감과 생소한 문화, 그리고 주변의 시선으로 늘어난 반발심으로 남한 상담사와의 상담도 쉽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트라우마가 있는 탈북민들의 경우 남한의 상담사가 상담과정에서 자신들의 아픈 과거를 들추거나 캐낸다고 쉽게 오해해 탈북민들의 마음이 더 굳게 닫히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새조위의 탈북민 심리상담사는 전원이 탈북민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탈북민들이 다른 탈북민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새조위의 탈북민 코칭이다. 탈북민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라는게 새조위의 설명이다.

현재 코칭 프로그램을 통해 효과를 본 탈북민들이 스스로 다른 탈북민들을 교육하고 상담하는 선순환 구조로 더 많은 탈북민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 후원금 만으로 살림 꾸리기엔 아픈 탈북민 넘쳐나

이미 가동되고 있는 의료지원센터는 4개의 병원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에 분포돼 있는 탈북민의 수를 감안하면 지방 개설이 시급하다.

신 대표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북한이탈주민 의료지원센터 의료상담실을 찾는 탈북민 중 절반 이상이 서울 외 지역에 거주한다.

때문에 새조위는 전북대병원, 부산대병원, 강원대병원에 하나원과 MOU를 맺었다. 하지만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상담실 공간은 병원이 지원하지만 한 명당 월 200만원에 달하는 상담사 월급 등은 온전히 새조위의 비용인데, 비영리단체인 새조위가 이 비용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각계각층에서 우리 단체의 활동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후원을 해주고 있지만 어떤 사업을 하든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항상 문제"라고 했다.

새조위는 영리단체가 아닌 만큼 운영비 조달이 어렵다. 상근직 직원들의 월급부터 행사 비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까지 모든 문제가 돈과 연관돼 있다.

당장 사무실 월세 비용부터 문제다. 새조위 사무실은 서울 종로구 빌딩 12층의 한 귀퉁이에 있다. 같은 건물 6층에는 새조위가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쓰는 넓은 교육장이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 교육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매달 건물주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새조위의 활동 취지에 감명을 받은 건물주가 무상제공 의사를 밝히면서 새조위는 안정적으로 이 교육장을 활용하고 있다.

새조위 2014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새조위의 2014년 연간 수입은 3억9000만원이 넘는다. 이 중 39%가 국고 보조금이고 22%는 개인 후원금이다. 나머지는 기업과 단체, 새조위 임원진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새조위는 2001년 통일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행정자치부와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는 새조위가 실행하는 프로젝트 하나에 일정 금액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탈북민 코칭 사업의 일부인 '홈 케어링 서비스' 프로그램이 행자부로부터 3500만원을 후원받는 식이다. 특히 올 10월에는 미국 국무부 난민과가 탈북민 코칭의 필요성과 우수성을 인정하면서 새조위에 2만달러(약 23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비영리단체(NGO)인 새조위가 27년간 운영될 수 있었던 데에는 각계각층의 후원이 크게 도움이 됐다. 새조위의 의료지원 사업은 SK 가문의 맏형인 SKC 최신원 회장이 후원하고 있다.

신 대표는 "'기부천사'로 잘 알려져 있는 최 회장의 후원은 '회사 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더 의미있다"며 "운영비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 회장이 선뜻 사비 지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교촌F&B, 애경그룹, 노스페이스 등도 행사 때면 새조위를 돕는 착한 기업들이다.

개인들이 내는 후원금도 새조위 살림에 큰 도움이 된다.

2014년 한 해 동안 200명이 8700만원을 기부했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새조위를 돕는 이들도 많다.

신 대표는 "물심양면으로 새조위를 돕는 분들이 많다"며 "이분들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새조위를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업을 위해 마련해야 할 비용은 늘 부족하다.

2014년 한 해 동안 임원진의 후원금을 제외한 새조위의 수입은 3억1000만원을 조금 넘었다. 하지만 사업비와 인건비 등 지출은 3억8800만원이 넘었다. 부족한 부분은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들이 채웠다. 새조위 임원진들이 2014년 한 해 동안 새조위를 위해 후원한 금액은 7500만원이 넘는다.

◆탈북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외로움 이겨내는 마음'

새조위 임원진들은 노동력은 무상제공 되고 있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특히 신 대표는 실향민 2세대다. 함경북도 길주군에 살던 신 대표의 아버지가 1·4후퇴 때 남쪽으로 넘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1988년 새조위 출범 당시 초창기 멤버로 참여했다.

신 대표 본인은 새조위에 후원한 금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매년 신 대표의 후원금이 이사를 포함한 개인들 중 가장 많다는 것이 이사들의 전언이다.

"아버지의 꿈인, 아버지 고향으로 가는날을 그리며 시작한 통일운동이 이제는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일이 됐다"는 신 대표는 탈북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용기,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으로의 치유를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미녀 대표는?
신미녀 새조위 대표는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연구하고 동국대학교 북한사회문화를 전공( 북한학 박사)했다.
현재 △배재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북한관광연구소 공동소장 △민주평통자문위원 △통일신문편집위원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 마음 빛 심리상담센터 부소장 △KBS 라디오 한민족 방송 고정출연중이다.
2009년 통일부장관 표창을, 2014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가족으로는 남편과 1남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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