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들에게 징크스(불길한 징조의 일)는 없는 것이 좋다. 징크스가 없어야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LPGA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GC의 그린은 버뮤다 잔디로 됐다. 버뮤다 잔디는 뻣뻣하고 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 그린에서는 눈에 익숙한 벤트 그래스와 달리, 힘과 방향 조절이 뜻대로 안된다. 스트로크는 제대로 했는데 볼이 홀을 스치고 나오거나 거리가 안맞는 경우가 많다. 최경주(SK텔레콤)도 버뮤다 잔디를 싫어한다. 국내 골프장 가운데 버뮤다 그래스를 통째로 식재한 곳은 거의 없고, 다른 종류의 잔디와 함께 드문드문 심은 곳은 더러 있다.
심규열 한국잔디연구소장은 "플로리다주의 버뮤다 잔디는 뻣뻣가고 거칠다. 직립형이라기보다는 바닥에 뉘어있다. 따라서 스트로크한 볼은 벤트 그래스와 달리 잔디 결에 따라 구름에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박인비는 20일(한국시간) 열린 대회 첫날 1언더파(버디2 보기1) 71타로 공동 22위에 머물렀다. 선두와 5타차다. 지난주 완벽에 가까운 퍼트로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그이지만, 불과 1주 후에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박인비는 라운드 후 미LPGA투어 홈페이지에 실린 글에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버뮤다 잔디는 내게 맞지 않는다. 오늘 파4,파5홀 티샷은 100%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칩샷은 한 번밖에 안 할 정도로 어프로치샷도 좋았다. 그런데 퍼트수 31개에서 보듯 퍼트가 안됐다. 평소처럼 잘 스트로크했는데도 볼이 홀을 스쳐지나가거나 스피드가 맞지 않았다. 2∼4라운드를 위해 버뮤다 잔디에서 더 연습을 해야 할 것같다.”
홈페이지측은 박인비가 거둔 통산 17승 가운데 상당수가 여름철에 우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름철에는 투어 대회 장소로 벤트 그래스 그린이 있는 곳을 주로 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2013년 이 대회에서는 공동 24위, 지난해에는 5위를 했다. 그의 명성에 비해 빈약한 성적이다.
박인비는 첫날 흠잡을 데 없는 샷을 했지만, 그린 플레이에서 리디아 고(고보경)에게 뒤졌다. 리디아 고의 이날 퍼트수는 27개였다. 리디아 고는 3언더파 69타로 공동 9위다. 박인비보다 2타 앞섰다. 그 간격이 끝까지 유지되면 평균타수(베어 트로피) 타이틀도 리디아 고의 몫이 될 판이다.
박인비가 2∼4라운드에서 리디아 고를 따라잡고 시즌 주요 타이틀의 수상자가 되느냐의 여부는 티뷰론GC의 버뮤다 그린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