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7080-④] 현실에 안주한 한국경제…예고된 저성장의 늪

2015-11-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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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선국·노승길 기자 = 한국경제의 부흥기는 산업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80년대를 꼽는다. 그러나 하향곡선을 그리는 시점을 두고는 이견이 팽팽하다. 대부분은 1998년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맞으며 실업률이 급상승하는 등 잘 나가던 한국경제가 곤두박질 쳤다. 이 같은 위기에도 한국은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을 타고 재기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너무 빠른 시간에 위기를 극복하면서 현실에 안주한 정부와 기업들은 세계 경제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는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는 지속적으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는 데 정부는 여전히 투자와 고성장의 청사진을 남발하고 있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예고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고 표현한다.

◆ 빠른 압축성장…저성장 고착화 되나

우리나라는 20세기 세계 역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평가받는다. 6·25 전쟁 이후 해외 원조를 받는 대한민국이 초고속 압축 성장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 선진국 대열에 합류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성장잠재력이 급속하게 약화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잠재성장률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1~1997년에 연평균 6.6%에서, 외환위기 이후인 1998~2006년 4.5%로 크게 하락했다. 이때부터 한국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경제성장은 서서히 끓어가는 솥 안에서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는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국내 투자 부진은 성장잠재력 약화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투자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있던 투자 여력은 해외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경제 성장의 핵심인 자본 축적이 정체됐기 때문이다. 국가의 투자 수준을 말해주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설비투자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1~1997년만 해도 13.4%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인 1998~2006년 동안에는 9.9%로 대폭 하락했다. 반면 내국인의 해외투자는 같은 기간 연평균 26억3000만 달러에서 56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현재의 경제성장률과 미래 경제의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2003~2006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 4.9%보다 낮은 4.3%에 그쳤다. 이후 2011~2014년 경제 성장률은 3.0%에 머물렀다. 올해 성장률은 2% 후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두고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을 앞다퉈 내놓는다.

특히 신지호 전 국회의원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본질은 자산버블 붕괴의 충격이 아니라, 저금리에도 투자가 늘지 않고 저물가에도 소비가 늘지 않는 저금리, 저물가, 저투자, 저소비의 4대 불황"이라며 "일본처럼 버블붕괴가 없다고 해서 한국은 다르다고 생각하면 이는 착각이며, 대한민국은 이미 일본식 복합불황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꼬집었다.

◆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2%대 전망…예고된 저성장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대로 전망했다. 저성장 늪을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2월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의 지속되는 경기둔화, 이슬람국가(IS) 테러에 의한 유럽경제 타격 등이 당장 우리나라 수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올해 수출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10월에는 6년 2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부가 발표한 3.3%의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목표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현대경제연구원 2.8%, LG경제연구원 2.7%, 한국경제연구원 2.6%다. 해외 투자은행(IB) 중에는 모건스탠리 2.4%, 씨티 2.4%, 노무라 2.5%, UBS 2.4% 등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

3%대 성장률을 전망한 기관은 한국은행 3.2%, 국제통화기금(IMF) 3.2%, 한국개발연구원(KDI) 3.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 한국금융연구원 3.0% 등이다. 해외 투자은행(IB) 중에는 바클레이즈캐피털 3.0%,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3.1% 등이 3%대 성장을 예상했다.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가 점점 낮아지면서 정부는 내년 성장목표를 달성을 위해 내수회복 카드를 또 꺼내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2년의 기간 동안 양호한 경제성적표를 받아내기 위해 수출보다는 내수에 초점을 맞춰 단기적 소비진작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위기 후 강해진 한국경제, 희망의 불씨를 찾아라

현재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회복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올해 들어 지속된 수출 부진을 내수가 살아나면서 이를 상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3분기 경제성장률은 1.2%를 기록, 6분기 만에 1%대를 회복했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수출이 3분기 성장률을 0.7%포인트(순수출 기준) 깎아 먹은 것에 반해 내수가 성장률을 끌어올린 것이다.

성장률 기여도를 살펴보면 정부 소비가 0.3%포인트, 정부 투자가 0.5∼0.7%포인트, 민간소비가 0.6%포인트를 기록했다.

정부가 이끄는 소비와 투자가 한국 경제를 지탱한 셈이다.

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17일 강연을 통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오히려 기초체력이 많이 개선됐고 이후 전망도 우호적"이라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또한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 경기둔화, 이슬람국가(IS) 테러에 의한 유럽경제 불안 등 대외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정부가 계속해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와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재정 여력을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면서 재정을 더 풀어 경기를 떠받쳐야 한다고 권고한다.

IMF는 지난 6월 내놓은 '공공부채를 언제 줄여야 하는가(When Should Public Debt Be Reduced?)'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을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재정 여력이 충분한 국가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 같은 나라는 인위적으로 국가부채를 줄일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을 통해 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일본이나 이탈리아처럼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높아 재정 여력이 낮은 국가는 적극적으로 국가채무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회원국 중 최우수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OECD는 '2015 재정상황 보고서'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회원국 대부분의 재정 상황이 악화했으나 한국에 대해서는 2008년 금융위기 전부터 재정여건이 양호했다며 "추가 재정 건전화가 필요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OECD 회원국들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2007년 평균 80%에서 2013년에는 118%로 늘어나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07년 28.7%에서 지난해 35.9%로 소폭 커지는 데 그쳤다. OECD 평균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분간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의지를 밝히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재정확대로 경제를 살리는 것이 현재 우리 경제의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접근법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내수 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살아나고 있는 소비심리를 유지하는 게 경기회복의 불씨를 이어나가는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추경 효과가 올해 4분기에 이어 내년 1분기까지 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부가 투자·소비심리를 살리기 위한 소비 활성화 정책을 계속해서 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부양책과 함께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 전문가는 "내수회복을 위한 단기성 정책 남발은 중장기 성장을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라며 "단기적 소비진작책은 가계소득 확대 방안과 병행해 추진돼야 하고, 단기·중장기 정책 간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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