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규하·신희강 기자 =지난해 말 기관과 학회 등 전문가들은 2015년을 ‘포스트(POST) 코리아’로 내다보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혁신’을 주문한 바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녹록지 않은 대내외 경제사정 속에서도 시장성이 우수한 국가에 좋은 물건을 많이 파는 양적 수출 전략을 펼쳐왔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한 길은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세계로의 경제영토 확장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혁신융합 등 국제 사회와의 새로운 메커니즘 형성에 있다.
농업 인구가 60% 차지하던 1960년대 초에는 외국의 원조에 의존했던 우리나라는 196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개발 계획을 시작했다. 압축성장으로 일궈온 한국경제가 1980년대 말 개도국과의 경협 증진 등 무역거래 다변화를 꾀한 것도 ‘압축퇴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부터 한국 기업들은 요소비용우위 및 대규모 투자에 기반한 기존의 경쟁전략에서 생산성 향상, 품질진보 등 고도화 경쟁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 경제협력 시대, “나 떨고 있니~”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 산업혁명은 급격한 기술발전을 일궜지만 과잉공급은 골칫거리였다. 결국 딜론라운드(1962), 도쿄라운드(1979), 우루과이라운드(1993) 등을 통한 시장 넓히기 진통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을 알린 계기로 보고 있다.
무역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로 WTO에 거는 기대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WTO의 공식 다자간 협상기구인 ‘도하개발어젠다(DDA)’는 통상협상의 급물살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2001년 WTO 제4차 각료회의 합의로 시작된 DDA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자 개별 국가 간 체결하기 시작한 경제영토 협상이 바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과 중국인 주요 2개국(G2)이 주도하는 거대 협상, TPP와 RCEP이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0월 5일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캐나다, 멕시코, 호주, 베트남 등 12개 국가가 창립국으로 참여한 TPP가 타결됐다. 이는 전 세계 국내 총생산(GDP)의 37.1%로 교역은 25.8%(대세계 비중)를 차지하는 규모다.
일각에서는 G2의 경제 패권 다툼에 낀 우리나라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지만 수출부진 속에서 불참에 따른 타격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양자 간 FTA에만 치중하는 등 TPP 참여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특히 TPP 체결로 일본의 경쟁력이 높아질 경우 우리로서는 세계 수출 시장에 고립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과 중국 성장세 둔화 등 이른바 ‘G2 리스크’로 인한 대외 리스크는 국내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 재무부가 TPP 참여 12개국들과 통화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틀을 마련하면서 역내 신흥국의 환율 컨트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변성식 한국은행 안정분석팀장은 “중국의 경기 둔화는 3년 이내에 발생할 수 있는 중단기 리스크로 미국의 금리 정상화는 1년 이내에 나올 수 있는 단기 리스크로 인식됐다”며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은 모두 큰 것으로 인식됐고 발생 가능성은 미국의 금리 정상화가 가장 높았다”고 설명했다.
◆ 경제협력 확대에 따른 이익 분석 주류....농업계 반대목소리 높아
해외 통상전문가들은 TPP 가입에 따른 한국의 손실은 전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1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2015 통상산업포럼 국제컨퍼런스'에서 피터 페트리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 교수는 “한국이 TPP에 참여할 경우에 일본과 기타 시장에 대한 접근을 확대할 수 있는 이득이 있다”며 “반면 TPP 참여로 인한 손실은 거의 없다. 한국이 세계 무역정책 의제의 중심에 계속 위치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반면 농민단체는 정부의 FTA와 TPP 체결 등에 대한 반대의 뜻이 확고하다. 한·중 FTA와 TPP 등은 반농민적 정책이라는 지적에서다.
농민단체 측은 “올해 쌀값은 지난해보다 20% 떨어졌다”며 “1990년대 쌀값으로 쌀을 팔아 2015년에 살라고 하면 살 수 있냐”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이들은 이어 “정부가 쌀 수입과 쌀시장 개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저버리고 한·중 FTA 비준과 TPP 가입을 사실상 선언했다”면서 “쌀 문제를 해결하고 쌀값과 농산물에 대한 적절한 가격 책정이 우선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무역 전문가들은 “FTA와 TPP, RCEP 등 경제협력으로 가는 지름길이 화두로 이미 가입을 위한 선언도 정부가 한 상태”라며 “세계경제질서를 보면 아시아의 역할도 커진 만큼 한국의 협상 위치를 높이고 민감한 부분은 실익을 잘 따져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통상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통상 전문가 육성 '시급'…"경협 주도권을 잡아라"
FTA 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차별화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FTA 체결로 경제영토를 넓히기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례로 최근 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반덤핑 관세 등 수입규제 조치를 강화하고, 국내 기술·인력 유출이 잦은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국가의 무역규제 조사는 총 304건으로, 2005년 202건 대비 50.4%나 증가했다.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무역규제 조치만 봐도 2011년 12건에서 올 들어 26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내년 발효를 코앞에 두고 있는 중국만 해도 우리 기업의 기술 유출과 인력 유출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한 해 중국 등으로의 기술유출로 연평균 50조원의 손실이 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의 경우 지난 6년간 적발된 불법 기술 유출만 253건에 달한다.
또 파격적인 조건의 연봉을 제시하며 인력이 빠져나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파격적인 조건의 인력 스카우트로 자발적으로 기술을 넘기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역 수출 지원기관 간의 '컨트롤타워 부재'도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수출 지원기관 간의 연계성을 확보하고, 유사·중복 사업 간의 조정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협의체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저조한 중소기업의 FTA 활용률도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관세청이 조사한 기업 규모별 FTA 활용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기업의 수출 활용률은 80.5%에 달한 반면, 중소기업은 59.0%에 불과했다.
FTA 수출 중소기업들이 여전히 원산지 증명 및 관리의 어려움, 전문인력 부족, 해외시장 개척의 어려움, 통관애로, 사후 검증에 대한 부담 등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FTA 체결국에 대한 전담 전문가를 두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상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정부 차원의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스마트폰·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의 경쟁력 보호를 위한 제도장치를 마련하고, 핵심 인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현지 전문가를 육성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또 현 정부의 통상 정책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고 제언할 수 있는 통상 전문가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기술무역과 관련된 종합지원 기관을 설립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무역보험공사 수출보험제도 내에 기술수출 보험을 개발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도 요구되고 있다.
통상정책에 정통한 한 민간교수는 “정부가 전문가를 자체적으로 육성하되, 현지 전문가를 영입해 전문성의 가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중국 측이 우리에게 상무관(산업부 직원)들을 보내달라고 한다”며 “중국은 업무량이 많아 통상 쪽 상무관을 늘려야한다. 미국은 제도화·표준화돼 있어 업무처리가 훈련화돼 있고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상무관을 늘릴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