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영국/웨일스)임의택 기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웨일스. WRC 영국 랠리의 현대차 서비스 파크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랠리를 달리던 경주차가 정비를 받기 위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니 소르도/맥 마르티의 7번 경주차가 입고되자 미케닉(정비인력)들이 동시에 달려들어 타이어를 교체하고, 앞 범퍼까지 떼어내며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주어진 시간내 모든 점검과 정비를 마치고, 다시 출발할 준비를 끝내야 한다. 뒤이어 헤이든 파든/존 켄나르드의 8번 경주차도 들어왔다. 엔진룸을 꼼꼼히 점검하는 미케닉들의 손이 더욱 분주해졌다. 비가 오고 바람도 불었지만 관람객들은 유리문 밖에 빼곡히 매달려 이 광경을 지켜봤다.
이번 랠리의 특징은 '가장 클래식한 랠리'로 불리는 그레이트 오르메(Great Orme)가 18번째 스테이지에 다시 포함된 것이다. 그레이트 오르메는 란디드노 북서부 아이리시해에 맞닿은 석회암 곶으로, 빼어난 절경이 있어 관람객에게 인기가 있다. 그러나 아찔한 해안절벽을 따라 굽어진 아스팔트 외길을 시속 140㎞ 이상의 속도로 달려야 해 드라이버에게는 부담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19번 스테이지는 오후 12시8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경기 이후로 미뤄야 했다. 한참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약 1㎞ 구간을 걸어가야 했다. 아침에 갔던 서비스 파크와 달리 이곳은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현대차 관계자가 간이 우비를 주긴 했으나 비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우산을 폈으나 바람에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진흙탕 길을 걸어가다 보니 구두에는 물이 들어찼다. 군대에서 체험한 행군보다 힘겨운 ‘고난의 행군’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하는 순간 후회하고, 전우애가 싹튼다’던 현대차 관계자의 말이 떠올랐다.
랠리 코스 길을 건너 경주차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을 안내한 것. 그러나 이곳이 19번 스테이지를 볼 수 있는 곳 중 비바람이 가장 강하게 몰아치는 곳이라는 건 경기가 끝나고서야 알게 됐다. 한마디로 사서 고생한 셈이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되고 있을 무렵 드디어 세이프티 카가 지나갔고, 이어 첫번째 경주차가 등장했다. 근처에 있던 일부 관람객은 환호성을 질렀으나 곧 침묵으로 바뀌었다. 현대차 팀인 줄 알았으나 폭스바겐 팀이었던 것. 시트로엥 팀이 지나고 나서 이어 현대차 경주차가 다가왔다.
함께 간 일행들이 다시 환호했다. 기자는 드라이버의 눈에 띄기 위해 가깝게 다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으나 곧 표정이 일그러졌다. 경주차가 지나가며 튀긴 진흙덩어리가 손등을 덮친 것. 경주차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흙덩어리도 꽤 아팠다. 이때 옆에 있던 기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드라이버보다 우리가 더 힘드네. 저 사람들은 차안에라도 있지.”
처음으로 직접 본 WRC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진흙길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포장도로나 트랙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자동차 경주와 달리 랠리는 잠깐의 실수로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0.1초라도 단축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를 내는 경주차를 직접 보니 감동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현대차 WRC 팀은 현대차는 이번 웨일스 랠리에서 다니 소르도/맥 마르티 팀이 4위, 헤이든 파든/존 켄나르드 팀이 5위를 기록했다. 폭스바겐 팀은 1, 3위를 차지했고 시트로엥 팀은 2위를 했다.
현대차 팀은 아쉽게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면서 이전 랠리까지 4점 차이였던 시트로엥 팀을 추월하지 못하고, 시즌 종합 3위를 기록했다. 현대차 WRC 팀은 참가 첫 해인 지난해 종합 4위에 올랐고, 올해 8월 독일 랠리에서는 팀 종합순위 2위까지 오르며 눈길을 끈 바 있다.
현대차 WRC 팀은 지난 4월부터 차세대 i20(개발 코드명 GB) 랠리카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1위 업체와 비교했을 때 1㎞ 주행 시 0.3초의 차이 밖에 없을 정도로 엇비슷한 수준”이라며 “현대차가 내년 WRC 시즌부터 새롭게 선보일 차세대 i20 랠리카는 더욱 발전된 퍼포먼스를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