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아르헤리치,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앙 치머만, 스타니슬라브 부닌 등등 당대 최고의 명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이 경연 우승을 통해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우승자는 ‘피아노 천재’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그들의 연주 자체는 또 하나의 음악계 화두가 된다. 쇼팽 콩쿠르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손열음, 임동혁 등 한국에도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있지만 이번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은 세계 속의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지 ‘한국인 최초’라는 의미를 떠나 국내 클래식 음악 및 문화계에선 노벨상 수상에 버금가는 쾌거인 셈이다. K-팝의 세계적 열풍에 이어 이제 K-클래식, 특히 피아노 강국으로서의 또 다른 한류의 교두보를 단단히 확보했다.
어쩌면 조성진의 우승은 당연한 결과였다. 다른 결선 진출 참가자들에 비해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그는 시종 깔끔한 연주,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최대한 배제한 순정 프레이즈 표현력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폴로네이즈 특별상’까지 받을 만큼 화제가 된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는 이 레퍼토리 사상 한 획을 긋는 명연이었다.
폴로네이즈는 항상 리듬 처리가 관건이었는데, 그는 자신만의 리듬은 물론 멜로디 모두를 완벽하게 처리한 것. 그 나이에 좀더 혈기왕성함과 충만된 감성을 표출하는 대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연주로 새로운 경지의 쇼팽 폴로네이즈를 연출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음에도 ‘누구를 사사한 스타일’ 또는 ‘어떤 학교에서 배운 스타일’ 등등 흔한 제도권 트레이닝의 티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조성진의 강점이다. 충분히 정석적임에도 자유롭고 독창적인 접근방식으로 충만한 건반의 크리에이터라고 할까.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조성진의 가공할 정신력이다.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 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집중력이 최고의 경지에 오른걸 알 수 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몰입도 뿐 아니라 청중을 매혹시키는 주술과도 같은 에너지도 포함된다. 빈틈이 전혀 없는 최고 수준의 연주력과 작열하는 내면의 열기를 오히려 담백하게 건반에 쏟아내는 놀라운 ‘정중동’의 인내는 여타 거장 쇼팽 스페셜리스트들과는 또 다른 조성진만의 해석법이다.
그는 쇼팽 연주에 있어서 아르헤리치도 아닌 폴리니도 아닌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만든 것이다. 가히 음악사에 기억될 명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오른 젊은 마에스트로다. 이경화는 “조성진의 피아노는 타 연주자들에 비해 톤 컬러부터 다르다”며 “스타인웨이 피아노에서 나올 수 있는 제일 질 좋은 최상의 소리를 뽑아낸다”고 극찬했다.
하나를 연주해도 흔하지 않은, 정말 ‘귀한 연주’를 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처럼 조성진은 이번 우승을 통해 ‘피아노의 모든 것’, ‘피아노 그 자체’라는 쇼팽에 있어선 세계 최고라는걸 증명했다. 앞으로 성장하면서 쇼팽 뿐 아니라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고전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바이올린의 정경화나 피아노의 백건우도 바흐 등 고전 레퍼토리를 연주하는데 있어선 연륜의 나이테와 기나긴 준비기간을 가질 만큼 언제나 신중했다.
일생에 한번 뿐이라 여겨질 만큼 ‘귀한 연주’를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향하는 이 가치는 이미 이번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보여주었고, 향후 럭셔리 쥬얼리보다 귀한 그의 연주여정도 나이테와 더불어 계속될 것 같다.
문화연예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