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표는 겉모습만 봐도 짧은 머리에 턱수염을 기르고 뿔테 안경을 껴 전형적인 디자이너의 모습이다. 그의 명함 또한 '경영하는 디자이너'라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날의 모습은 디자이너도 최고경영자(CEO)도 아닌 영락없는 우아한 형제들의 직원이었다.
무엇보다 김 대표는 창업하려고 창업을 하진 않았다고 한다. 즉 시작점은 서비스였고, 회사가 커지면서 구성원들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갔다.
김 대표는 "창업자가 나쁜 회사를 만들려고 회사를 세운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창업자 각자 기준은 다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회사인지 구성원에게 묻고, 복지가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대표는 직원들 한명 한명의 목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 창업 초기 10명 정도의 직원이 있을 당시 여직원이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고 싶다는 말에 김 대표는 사원증을 만들었고, 벌레가 없고 한적한 곳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한 직원의 말에 석촌호수와 놀이동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회사를 옮겼다.
김 대표는 "직원들이 원하는 버킷리스트의 70%는 달성했다"며 "올해는 사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직원이 많아 열심히 미래 조감도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업문화를 통해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잡플래닛과 포춘코리아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한국 기업 50’에서 중소기업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가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사회생활을 했던 김 대표는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만의 일을 하고자 했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수제가구 사업을 시도한 바 있다. 불과 짧은 시간 안에 김 대표는 수억원의 빚과 전셋집마저도 날렸다.
김 대표는 당시 슬하에 다섯 살배기 딸이 있었는데 자신의 실패와 가난이 아이에게 대물림될까 두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적인 박탈감이 컸을 김 대표에게 베이비프렌즈 설보미 CDO(옛 우아한언니들 대표)가 내조로 힘을 실어 줬고 김 대표는 자신을 스스로 디자이너로 정의하고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이에 김 대표는 경영자이기보다는 디자이너로서 살아가길 원하는 포부도 드러냈다.
그는 "최근 디자인 대학원을 입학한 지 5년여 만에 졸업했다"며 "디자이너로서 모두가 제약 없이 쓸 수 있는 한글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서체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디자이너 출신답게 김 대표는 '한나체', '주아체'를 내놓아 배달의민족을 하나의 트렌드로 키워내고 있다. 2012년에 출시된 ‘한나체’는 현재까지 28만건 이상, 2014년에 출시된 ‘주아체’는 20만 건 이상 다운로드 됐다.
최근에는 세 번째 무료 서체 ‘배달의민족 도현체’를 출시했다. 도현체는 이름에도 특별함이 숨겨져 있다. ‘도현’은 우아한형제들 구성원의 자녀 이름이다. 전 직원이 제비뽑기를 해 당첨된 직원의 자녀 이름으로 서체 명을 지었다.
앞서 출시된 한나체는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의 첫째 딸 ‘한나’에서 따왔고, 주아체는 둘째 딸 ‘주아’에서 따온 이름이다.
김 대표는 “결과적으로 배달의민족 서체는 모두를 위한 서체이자 브랜드를 알리는 데 크게 일조한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김봉진 대표
▷1976년 서울 출생 ▷1997년 서울예술대학 실내디자인 졸업 ▷2002~2003년 디자인그룹 이모션 디자이너 ▷2003~2005년 네오위즈 디자이너 ▷2008~2010년 네이버 디자이너 ▷2011년 우아한형제들 창업 ▷2015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시각디자인 석사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