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사력 대해부 7] 시진핑 군 장악의 핵심고리, '쉬차이허우' 본거지 심양군구

2015-08-1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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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18일 선양군구(沈阳军区)에 속해 있는 16집단군을 방문했다. 2012년 12월 권력을 장악한 시진핑은 그 동안 약 20여 차례나 군부대를 시찰했는데, 올해만 이미 5번의 군부대 방문이 있었을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시진핑 주석의 16집단군 시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상민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는 "정권 초기 권력기반이 다소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을 창시한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유명한 말 그대로, 군 내 자신의 지지를 확보하는 한편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일련의 정치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이 16집단군으로 간 이유

선양군구는 북한과의 국경을 방어하는 부대가 결집돼 있다. 이들 부대의 주 업무는 한반도 유사시 북한과 공동으로 한미연합군을 억제하고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작전 지역은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군 인사를 앞 둔 시점인 지난달 18일, 시진핑이 선양군구 소속 16집단군을 찾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8월1일 중국군 창설 기념일을 앞두고 7월에 군 인사를 단행한다. 올 해에도 지난달 31일 중국의 최고 계급인 상장인사를 단행, 지난해에 4명, 올해 10명을 상장으로 진급시켰다.

이번 인사는 시진핑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으면서 단행한 상장인사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시진핑이 권력을 장악한 후 임명한 상장들만 해도 벌써 21명에 이른다.

서상민 교수는 "특히 이번 인사는 그동안 시진핑이 진행한 군 부패척결이 일단락된 시점에서 이루졌다는 점에서 시진핑이 군장악에 성공했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6집단군은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시기 10년 동안 실질적으로 중국군 내 최고 실세였던 쉬차이허우(徐才厚)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국민대 연구팀은 시진핑의 선양군구 방문에 대해 "시진핑은 거의 2년간 지속되었던 군 부패척결을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이곳에서 선언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진핑 군 장악 위해 후진타오 능가하는 실권자 쉬차이허우 척결

시진핑 집권 초기 최대의 사건이었던 ‘쉬차이허우 사건’의 주인공인 쉬차이허우는, 선양군구에 속해 있는 랴오닝성 출신이다.

하얼빈 공정대학을 나온 쉬차이허우는 후 1963년 지린성에서 군 생활을 시작, 1984년 대군구인 선양군구 정치부 대중공작부 부장을 거친 후 이듬해에 16집단군 정치부 주임으로 가 1990년 정치위원으로 있을 때 소장으로 진급했다.

연구팀은 "세간에 장쩌민(江澤民)의 대리인으로 잘 알려지기도 한 쉬차이허우는 장쩌민의 도움으로 서양군구에서 중앙무대로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1992년 당총서기가 된 장쩌민은 당시 군 지지세력이 약했다. 당시 중앙군사위 부주석이었던 전 국가주석 양상쿤(楊尙昆)과 그의 동생 양바이빙 일파가 군을 장악하고 있어, 장쩌민은 이들 양씨 형제와 군귀을 두고 나퉜다. 이것이 바로 ‘양가장사건(楊家將事件)이다.

결국 양씨 형제가 패배하고 장쩌민의 승리로 끝나게 되자 양씨 일파가 대거 중앙 군직에서 추출되면서 쉬차이허우가 선양군구에서 중앙무대로 진출하게 된다.

쉬차이허우는 중앙에 진출해 총정치부 부주임으로 재직 시 중장으로 진급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장쩌민의 총애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도 이 때 쯤이다.

쉬차이허우는 승승장구해 총정치부 상무부주임 겸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승진, 장쩌민이 물러나고 후진타오 지도부 출범 이후인 2002년 중앙군사위 위원 겸 총정치부 주임 등을 맡게 된다.

서 교수는 "쉬차이허우는 2012년 시진핑 지도부 출범 전까지 궈보슝(郭伯雄)과 함께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서 후진타오를 능가하는 실권을 가진 군 실세였는데 장쩌민의 군 세력을 관리하는 대리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시진핑의 부정부패 척결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권력투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분석이 많다"며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연관돼 있는지는 외부에서 팍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중국군 역사상 가장큰 부패 스캔들 '쉬차이허우 사건'

시진핑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장쩌민-쉬차이허우' 라인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후진타오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은 너무나 명확해 보였다.

쉬차이허우가 중국군 내에서 구축한 네트워크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몸통을 들어내지 않는다면 군을 장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 역시 확실했다. 시진핑의 군내 부패척결이 쉬차이허우까지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 교수는 "쉬차이허우는 직권을 남용하고 군인사에 개입하는 대가로 엄청난 뇌물을 받은 혐의을 받았고, 지난해 6월 30일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당적박탈처분을 받은지 한 달 뒤인 7월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군적을 박탈, 상장계급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올 3월 15일 방광염으로 쉬차이허우가 사망해 이 사건이 마무리되긴 했지만, 쉬차이허우 사건은 중국인민해방군 역사상 가장 큰 부패 스캔들로 남았다.

연구팀은 '이 사건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처리하는 과정에서 쉬차이허우가 20여년 동안 중국군 전체에 구축한 세력에 상당한 동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3월 군기율위원회가 쉬차이허우의 기율위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하자 한달 후인 4월 8명의 중국군 수뇌부가 시진핑에 대해 충성을 서약하는 명세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중국 군 검찰이 쉬차이허우를 기소하자 12월, 37명의 군수뇌부가 집단적 충성 맹세를 했다.

서 교수는 "시진핑이 집권 후 20여 차례에 걸쳐 전국의 일선 군부대를 찾아다닌 것 역시 이러한 동요의 움직임을 잠재우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연구팀은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시진핑이 두 번째 쉬차이허우의 본거지인 선양군구를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시진핑은 이 자리에서 "쉬차이허우의 기율위반과 위법활동이 부대건설에 전면적이면서 심층적인 해를 끼쳤다"라고 비판하고 새로운 형세와 임무에 적응하고 강군을 달성하기 위해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정리가 되었으니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이렇듯 선양군구는 시진핑 집권초기 군 장악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고리인 셈이다.

<도움주신분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연구팀 서상민 HK연구교수, 유희복 초빙연구원, 모준영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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