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히어로물이나 무협물이 그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등장했을 뿐이다.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와 김봉한 감독의 ‘히어로’가 있지만 정통 무협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안성기, 정우성, 주진모, 장쯔이 주연의 ‘무사’와 ‘무영검’ ‘중천’ ‘비천무’ 등이 무협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중국 무협영화에는 못 미친 게 사실이다.
‘협녀, 칼의 기억’(감독 박흥식·제작 티피에스컴퍼니)은 중국 못지않은 한국형 ‘무협버스터’의 출현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협영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소한 액션과 영상미 면에서는 이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
말이 필요없는 전도연, 이병헌, 김고은 주연의 ‘협녀, 칼의 기억’은 칼이 곧 권력이던 고려 말, 왕을 꿈꿨던 한 남자의 배신 그리고 18년 후 그를 겨눈 두 개의 칼까지 뜻이 달랐던 세 검객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을 그린 액션 대작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무협영화의 기본기와 마찬가지인 높이, 멀리 뛰기를 선보인다. 홍이는 10m는 족히 돼 보이는 해바라기를 뛰어 넘는다. 염원하던 축지법에 성공한 홍이는 들뜬 마음에 마을 투기장으로 향한다. 투기장에서는 유백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호위무사인 율(2PM 이준호)이 현란한 무술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풍진삼협의 스승(이경영)의 부추김에 투기장으로 뛰어든 홍이의 보법에 유백은 본능적으로 월소의 발자취를 느낀다. 이후 월소와 유백, 홍이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김고은은 장쯔이처럼 보이고, 전도연은 장만옥이 생각난다. 이병헌은 이연걸과 견자단이, 이경영은 ‘리무바이(주윤발)’를 떠올리게 만든다.
중국배우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한국이 무협과 관련해 소설이나 ‘열혈강호’나 ‘용비불패’와 같은 만화의 콘텐츠로 소비할 때 중국은 와이어 액션이 기본인 무협영화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협녀’의 가장 큰 특징은 ‘칼’에 있다. 박흥식 감독은 전도연, 김고은, 이병헌이 사용하는 칼에 따라 효과음에 차이를 둘 정도로 세심하게 연출했다.
박흥식 감독은 신재명 무술감독과 함께 최대한 ‘날 것’의 무술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배우들 역시 열의가 대단해 스턴트를 최소화하고 CG를 줄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김고은이 한 컷으로 연기한 아주 긴 실내격투신(scene)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전망이다.
아쉬운 점은 121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 못해 스토리의 연결고리들이 끊기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겠지만 불필요한 장면들 또한 있고, 국내 정서상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결말이 준비돼 있어 관객들에게 마이너스로 작용될 수 있다.
장단점을 차치하고 ‘협녀’의 등장은 한국 무협영화의 한 획을 그을만한 액션대작이라는 것이다. ‘협녀’의 성공여부에 따라 이후 ‘무협물 부흥기’를 맞이할 수도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오는 1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