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역을 열연한 배우 김고은이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배우 김고은(24)은 데뷔작 ‘은교’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싱그러운 열일곱 소녀 연기를 소화,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김고은은 차기작부터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단편영화는 차치하고, ‘몬스터’에서는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채 이민기와 사투를 벌이는 복순 역, ‘차이나타운’에서는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졌지만 엄마(김혜수)에게 인정받는 해결사 일영으로 분했다. 액션연기의 달인처럼 김고은은 강한 캐릭터를 맡아왔다.
13일 개봉을 앞둔 ‘협녀, 칼의 기억’(감독 박흥식·제작 티피에스컴퍼니)도 김고은에게는 쉽지 않았을 작품이다. 매 신(scene)마다 와이어를 항상 찼으며 실제 무게의 검을 휘둘러야 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마지막에는 폭발하는 감정을 유지한 채 무술을 펼쳐야 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역을 열연한 배우 김고은이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지난 10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김고은을 만나 ‘협녀’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지막 촬영날 신재명 무술감독님이 눈물을 글썽이셨다. 울어야할 사람은 난데 왜 무술감독님이 우시냐고 했다”는 말로 당시를 가늠케 했다.
“기본적으로 무협에 대한 이해가 있는 편이죠. 어린 시절 중국에서 10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친숙한 장르이기도 했고요. ‘동방불패’ ‘와호장룡’ ‘동사서독’ 등 어릴 때부터 즐겨봤죠. ‘협녀’ 완성본을 보니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다 같이 힘들게 액션을 했잖아요. 후반작업을 거쳐 완성도 있는 장면들이 신기했죠.”
‘협녀’는 칼이 곧 권력이던 고려 말, 왕을 꿈꿨던 한 남자의 배신 그리고 18년 후 그를 겨눈 두 개의 칼까지 뜻이 달랐던 세 검객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을 그린 액션 대작이다.
고려의 권력을 얻기 위해 배신을 택한 야심가 유백(이병헌)은 사형사제지간이었던 월소(전도연)와 풍천(배수빈)을 배신한다. 월소는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풍천의 딸 홍이(김고은)를 키워 대의를 위해 복수를 다짐하게 만든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역을 열연한 배우 김고은이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시나리오에서부터 액션 분량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다른 역에 비해 와이어를 많이 타야했고요. 훈련부터 촬영까지 정확히 1년이었어요. 1년 동안 항상 온 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죠. 골반이 결리고, 근육통이 없는 곳이 없었어요. 파스를 그냥 뿌리는 건 소용이 없더라고요. 파스라는 게 치유가 아니더라고요. 일시적인 마비 현상이라고 할까요? 파스 구멍을 아픈 부위에 바짝 밀착시켜 뿌리면 아리지만 그렇게 뿌리면 몇 시간은 견딜만 하더라고요. 근육 이완제는 수시로 먹었고요. 현장에 마사지를 하시는 분이 상주하셨어요. 쥐가 나면 마사지를 해주셨는데, 쥐 정도는 저 혼자 풀었죠(웃음). 와이어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면 혼자 골반을 풀어주곤 했어요.”
듣기만 해도 근육통이 걸릴 것 같았지만 김고은이 힘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액션에 감정연기를 더해야한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액션만 했다면 한계에 부딪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매 회차마다 감정 연기를 함께 해야 하니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았어요. 좌절할 것만 같았죠. 그래서 무술감독님과 타협점을 찾았어요. 제가 ‘연기가 더 중요한 장면’이라고 고집을 부리면 와이어신 하나 정도 빼주신 거죠(웃음). 스태프들에게는 저랑 신 감독님이랑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보는 재미도 있었을 걸요?”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김고은은 스스로 많은 배려를 받았다고 했다. 특히 전도연은 액션으로 탈진한 김고은이 감정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이미 스탠바이 상태인 스태프들이 촬영하자고 해도 ‘배우가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기다려라’라고 호통 아닌 호통을 치기도 했다고.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역을 열연한 배우 김고은이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병헌은 반대였다. 김고은의 감정이 올라와 있다고 판단, 스태프들에게 ‘배우 준비됐는데 뭐하냐. 빨리 가자’라고 재촉했다는 후문이다. 배우의 마음은 배우가 잘 안다고 그런 이해심과 배려는 ‘차이나타운’의 김혜수에게도 있었다고 김고은은 덧붙였다.
장편영화마다 액션을 소화한 김고은은 밝은 캐릭터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치즈인더트랩’은 그런 의미에서 선택한 것이죠. 일단 피할 수 없는 작품이었어요. 제안을 받았지만 영화 때문에 고사를 했는데 스케줄이 조정이 되더라고요. 그 다음에 제의가 한 번 더 들어왔고요. 이윤정 감독님을 믿고 가기로 했죠. 밝은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었어요. 이제 20대 후반이 될텐데, 20대 초반이 갖는 감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에만 나올 수 있는 표현이 있다는 거죠. ‘은교’를 21세 때 찍었는데, 다시 ‘은교’를 봐도 딱 그 시기에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느껴요. 그게 멜로가 될수도 있겠죠? 나이에 따른 사랑의 방식도 다르다고 생각하니까요. 연기를 통해 좀 더 많은 표현을 해보고 싶어요.”
김고은은 ‘협녀’의 장점에 대해 액션이 아닌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극적인 드라마인데 그게 거북스럽지가 않더라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담긴 영화라면 출연을 결정하지 않았겠죠. 시나리오를 읽는데 감정이 동요가 되더라고요. 그게 관객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 장점인 것 같습니다.”
김고은의 감정 전달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은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