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성평등 도서관' ‘여기’ 여성관련 서적만 1만여권

2015-07-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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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밖에서 찍은 서울여성플라자의 모습이다. 사진=정등용 기자]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여기’는 여성이 기록하고, 여성을 기억한다는 의미다. 바로 이곳이라는 뜻으로 시민 공모전을 통해 지어졌다”

14일 개관한 '성평등 도서관' ‘여기’다. 국내 최초로 설립됐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서울여성플라자 2층에 들어선 이 도서관은  우리나라의 성평등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여성정책·여성운동·여성단체·여성기관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관련 모임과 토론, 전시 등을 열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시민단체가 기증한 5천여 권을 비롯해, 여성관련 서적만 1만여권이 꽂혔다.

1993년 국내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이슈화한 서울대 신교수 사건부터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 2005년 호주제 폐지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굵직한 성평등 기록이 모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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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조로 구성된 성평등 도서관 '여기'의 내부 모습이다. 사진=정등용 기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도서관 내부의 풍경은 마치 미술 전시장같은 풍경이다. 베이지색 책장 비스듬하게 꽂혀있는 책들로 기존의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는 인테리어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 도서관 관계자는 "비스듬한 높이의 책장은 작은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를 이룬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방문객들이 책을 갖고 편하게 앉아서 볼 수 있는 책상과 의자도 마련됐다. 특히, 램프 스탠드와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어 노트북을 이용하는 이용객들도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할수 있게 했다.

 

['가정폭력'과 같이 독특한 주제 분류법으로 책들이 비치돼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여기’가 들어선 곳은 과거 여성사 박물관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여성가족부의 이동으로 여성사 박물관도 자리를 옮기게 됐고, 그 빈자리를 여성 정책 연구 자료들로 채우게 됐다.

‘성평등 도서관’에는 일반적인 도서관에서는 특히 찾기 어려운 여성 관련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한국여학사협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처럼 여성 전문 기관들의 자료가 구비돼 있어 남다른 이점이 있다.

도서별 분류도 일반 도서관과 차이점을 보인다. ‘가정폭력’ ‘여성운동’처럼 일반 도서관에서는 보기 힘든 분류법으로 ‘여기’만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 목록을 독특한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천경자 작가의 해외여행스케치전이 성평등 도서관 '여기' 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여기’는 라키지움을 표방한다. 라키지움이란 도서관(Library), 아카이브(archive), 미술관(museum)을 합친 말이다. 그래서 성평등 도서관에는 책 뿐 만 아니라 민간기관의 아카이브와 미술 작품이 전시 중이다.

현재 ‘여기’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협력해 미술 작가 천경자 씨의 해외여행스케치 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천경자 작가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여기 도서관 관계자는 "천경자화백의 작품이 미술관 밖에서 전시된 것은 처음이어서 의미를 더한다"고 말했다.

 

[故 박영숙 여사의 메모와 사진들이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준다. 사진=정등용 기자]



‘성평등 도서관’은 여성 인권 신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성의 정치 참여와 선거제도에 대한 사진을 비롯해 여성 인권의 역사에서 기억될만한 순간들을 방문객들도 느낄 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특히, 여성 인권 운동계의 대모로 평가 받는 故 박영숙 여사의 메모와 사진들이 전시된 점도 눈길을 끈다. 박영숙 여사가 세세하게 적어 놓은 메모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진들은 그의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한 열정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일각에서는 ‘성평등 도서관’이란 이름이 지나치게 성차별만을 부각하는 의미를 띄어 오히려 역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에 대해 도서관 관계자는 “성평등이란 이름 대신 여성에 포인트를 두고 이름을 짓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국가 정책의 측면을 봐도 여성 인권 신장의 큰 흐름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1층 안내표시판(왼쪽)에는 '여기'가 2층에 표시돼 있지 않다. 높은 위치의 책장(오른쪽)은 손이 닿기 힘든 구조다. 사진=정등용 기자]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건물 내 ‘여기’가 몇 층에 위치해 있는지 표시해주는 안내판이 없었다. 서울여성플라자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물어야만 ‘여기’를 찾을 수 있는 상황이다.

손이 닿기 힘든 책장의 높이도 아쉬웠다. 도서관에서는 누구나 쉽게 책을 꺼내 펼쳐볼 수 있어야하는데, 높은 위치에 있는 책은 꺼내 보기가 힘든 구조였다. 도서관 측은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이동식 사다리를 구비해 놓은 상태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설지만 이미 선진국에선 전문적인 성평등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역사와 삶과 기록,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여기'가 문을 활짝 열고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도서관 '여기'는 지하철 1호선 대방역 3번 출구를 나와, 걸어서 5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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