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경일공업·경일산업·현대강관·‘현대하이스코’ △현대종합제철 △삼양특수강·한국특수강공업·한국종합특수강·삼미종합특수강·삼미특수강·비앤지스틸·‘현대비앤지스틸’ △강원탄광·강원산업 △동부특수강·‘현대종합특수강’ △SPP율촌에너지 △한보종합건설·‘한보철강공업’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대한중공업공사·인천중공업·인천제철·INI스틸·‘현대제철’
창업주를 거쳐 ‘범 현대가’가 숙원사업으로 40년간 추진해온 제철사업의 역사에 남은 기업 이름들이다.
종합제철에 대한 꿈은 창업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5년 경일공업(현대하이스코)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창업주는 1977년 현대종합제철을 설립하고, 1978년 인천제철을 인수하며 종합제철사업의 커다란 발걸음을 내딛었다.
창업주의 꿈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이뤄낸 주인공은 정 회장이었다. 1981년 경일공업에서 이름을 바꾼 현대강관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며 제철사업과 첫 인연을 맺었고, 5년 후인 1986년에는 인천제철(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며, 현대가의 철강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와 정 회장은 1980년대 ‘제2종합제철소’, 1994년 ‘제3종합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으나 경쟁사의 견제 및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6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 취임사를 통해 “제철사업을 재추진 하겠다”고 천명하고, 일명 ‘하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하지만 IMF외환위기가 발발해 1998년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세 번의 도전과 실패.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9년 현대그룹은 정부의 재벌 구조조정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제철과 현대강관을 매각하고 제철사업에서 손 떼겠다고 발표했다. 꿈이 사라지는 순간. 정 회장은 사돈기업이었던 강원산업을 인천제철과 합병시킨 뒤 1999년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천제철과 현대강관을 편입시킨데 이어 2000년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며 조용히 종합제철에 대한 의지를 이어갔다. 체력을 키운 4년 뒤 한국에서 일관제철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한보철강 인수전에서 승리했다.
기세를 올린 정 회장은 2006년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시작해 2010년 고로 1, 2호기, 2013년 고로 3호기를 연이어 가동했으며, 이어 특수강 공장 건설, 동부특수강 및 SPP율촌에너지 인수 등을 통해 쇳물에서 강판, 강관, 특수강, 선재, 스테인리스스틸(STS) 등 철강에 관련한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최초의 민간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포기하면 될 일을 창업주와 더불어 정 회장이 왜 그토록 평생을 두고 종합제철사업에 열정을 쏟아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곤 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후 개도국의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갈망을 “우선 독립 그다음 항공로 그 다음엔 바로 제철공장 건설”이라고 표현했다. 치솟은 고로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선진국에 대한 정치적 독립의 상징이며 경제적인 면에서는 오래고도 질기게 엮인 ‘남(개도국)’과 ‘북(선진국)’의 종속관계를 끊는 이정표가 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이 생각하는 종합제철사업도 이와 같다.
1970년 현대차에 입사 후 19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이후 현대정공, 현대강관, 인천제철, 현대산업개발 등의 경영을 총괄하며 ‘MK사단’을 형성했다. 이들 회사들을 그는 자동차 부품 생산 및 애프터서비스·컨테이너박스·공작기계·철도차량·전차·골프카·구명정·요트·헬기·완성차·건설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이들 사업들은 모두 철강을 다량 소비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1970년대말 이후부터 철강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기업은 현대였다.
당연히 철강소재 자급의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고, 어떻게 해서든지 진출을 하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경쟁사들은 물론 정부로부터 강한 견제와 반발에 부딪쳐야 했다.
어려운 과정이 되풀이 됐으나 정 회장은 때를 기다리며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사들이 미처 손을 뻗지 못했던 신사업을 벌이는 한편 활발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키웠다. 총수의 뚝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며, 범 현대가에서도 제철사업은 MK의 성과라고 인정하는 이유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통합 현대제철의 출범으로 자동차 제조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소재산업(상류부문)과 현대모비스의 부품생산 전문화(하류부문)의 연계라는 큰 사이클을 완성하게 됐다”며 “정 회장의 리더십 덕분에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고도화 된 자동차 전문기업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