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 국회가 정부의 행정입법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한 개정 국회법이 공무원연금개혁 처리와 연계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계기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 충돌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논란이 되는 개정 국회법 조항은 '제98조의 2 제3항'이다.
국회 상임위가 시행령(대통령령) 등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해 법률의 취지·내용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행정기관에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행정기관은 수정·변경 요구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국회의 수정 요구를 정부가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결국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위헌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보다 더 나아가 정부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처럼 행정입법을 통해 모법(母法)을 무력화한 사례가 자주 발생해왔다며 앞으로 각 상임위에서 문제가 있는 행정입법을 수집해 대대적으로 손질해나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야당은 아직 수정대상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부담 문제 등 최근 논란된 사안부터 문제점을 파악할 계획이다.
노동개혁의 경우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된 이후 정부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변경 등 노동계의 반대가 극심한 개혁과제를 법 개정이 아닌 행정명령이나 규칙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모법인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사유 또한 엄격히 제한하고 있지만, 정부가 행정입법을 통해 근로기준법의 무력화를 시도한다는 게 야당과 노동계의 주장이다.
누리과정 예산의 경우 야당과 지방교육청은 애초 무상보육이 박근혜 정부의 공약인 만큼 정부의 추가 재정지원 없이 교육청에 예산 편성만 강요하는 것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보육 문제를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등을 근거 삼아 지방교육청이 정부로부터 받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맞서며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이 강제적으로 편성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추진하고 있어 충돌이 예상된다.
이밖에 진보진영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노조 통보를 한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이 행정관청이 노조해산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던 옛 노조법이 폐지된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상위법의 위임을 받지 않는 '유령 조항'이라고 주장하는 등 문제가 있는 시행령의 사례가 상당하다는 게 야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시행령 수정은 여야가 해당 상임위에서 함께 개정요구안을 작성해 의결해야 하고 청와대의 큰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야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과 함께 공동으로 수정이 필요한 시행령을 판별하는 등 여당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향후 여야 협상과정에서 시행령 수정 요구도 연계시키는 전략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