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아람 기자 = 미 정부가 수십 년간 부정부패로 곪아있던 국제축구연맹(FIFA)를 향해 수사의 칼날을 빼들었다. FIFA 창설 111년만에 최대 위기다.
FIFA는 지난 1904년 ‘축구 발전과 국제 경기의 원활한 운영’을 목표로 호기롭게 창설됐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한 조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 상태다.
특히 이번 미 검찰 수사의 칼 끝이 ‘축구계의 독재자’로 불리는 제프 블래터(79) FIFA 회장을 겨누고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오는 30일 차기 FIFA 회장을 선출하는 투표가 실시되는 가운데 이번 수사가 그의 20년 장기집권 행보에 제동을 걸 수있을지 세계인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美검찰, FIFA 고위 인사 14명 기소 방침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27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7명의 FIFA 고위직 인사들이 체포되자 곧바로 기소대상자 14명의 명단을 공표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검찰은 이들에게 뇌물 수수, 탈세 등 47개 혐의를 적용했다. 기소 대상자에는 제프리 웹 현 부회장 등 FIFA 고위직 9명, 미국과 남미 스포츠마케팅 회사 간부 4명, 그리고 뇌물수수 중재자 1명이 포함됐다.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 합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기소는 전 세계와 미국에서 광범위하고 뿌리깊은 축구경기 부패가 있음을 보여준다”며 “부패 관행을 척결하고, 위법 행위자를 법정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앞서 스위스 검찰은 미국의 수사요청을 받아들여 이날 오전 추리히 바우어 오락 호텔을 급습, 웹과 피게레도 부회장을 포함한 FIFA 집행위원 7명을 체포 압송했다. 스위스는 이들의 신병을 조만간 미국에 인도할 방침이다.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 “1만달러 받아와라”…구체적 뇌물 수수 정황 드러나
이날 미 법무부의 FIFA 뇌물 의혹 관련자 공소장이 공개되면서 FIFA의 일그러진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해당 공소장에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대회 유치 과정에서 행해진 비리 정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FIFA 임원들이 남아공을 차기 월드컵 개최지로 밀어준다는 조건으로 남아공 정부로부터 1000만 달러(110억4800만) 이상의 뇌물을 수수했다.
특히 당시 FIFA 집행위원이었던 잭 워너 전 FIFA부회장은 제3자에게 프랑스 파리로 가서 남아공 월드컵유치위원회 고위 관계자로부터 ‘호텔방에서 1만 달러의 지폐 묶음들로 채워진 서류가방’을 받아올 것을 지시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전달받았다.
당시 모로코도 2010년 대회를 유치하려고 워너에게 100만 달러(11억480만 원)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아공으로부터 더 큰 액수를 제의 받은 워너 전 부회장은 집행위원들에게 “FIFA 고위 간부들과 남아공 정부, 남아공 유치위가 1000만 달러를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며 남아공으로 표를 몰아줄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 "심판자 노릇 당장 멈춰라" 반발…FIFA 스캔들, 외교 갈등 비화 조짐
이번 FIFA 뇌물 혐의 수사가 당장 차기 월드컵대회 개최국인 러시아와 미국 간 외교 마찰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FIFA 간부들을 체포한 것은 미국이 사법권역의 바깥 지역에서 불법을 저지른 또 다른 사례”라며 “미국은 자국 영토 바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심판자 노릇을 당장 멈추고 국제법 절차를 따르기를 촉구한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미국 검찰은 혐의자들이 뇌물 수수를 미국에서 논의했고, 미국 은행을 통해 돈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현행 미국의 세법이나 금융기관 규제법상 이들을 자국 법정에 세우는 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