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부러진 성격과 까칠한 성격,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짊어진 짐의 무게가 무거웠던 현정(도지원)은 자신의 모난 부분을 감싸 안아 주는 남자 문학(손창민)을 만나 한 걸음 더 성장한다. 최근 KBS2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극본 김인영․연출 유현기 한상우) 종영 후 아주경제와 만난 도지원(49) 역시 현정과 닮은 데가 많다.
“19회분에 문학과 현정이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있어요. 저와 손창민 선배는 솔직히 이제 와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었죠. 그렇게 풋풋하고 예쁘게 나올 줄도 몰랐고요. 잘못했다면 어색하고 민망할 수 있겠지만 손창민 선배와 호흡도 잘 맞았고 리드해 주시는 부분이 있어서 어색하고 풋풋하면서도 재밌는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똑 부러지게 처리하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지만 현정에겐 딱 하나 부족한 점이 있었다. 바로 ‘연애 경험’이다. 극중 모태 솔로로 출연한 도지원은 “저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현정이 사랑을 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1화의 현정과 24화의 현정은 완전 다른 사람이에요. 까칠했던 인물이 마지막 회에서는 해맑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게 연기자로서도 굉장한 즐거움이었죠. 한 작품 안에서 여러 모습, 성장 과정을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현정이라는 인물은 속마음은 여리지만 장녀기 때문에 많은 걸 감추고 살아야 했을 거예요. 그걸 문학이 건드려 준 거죠. 문학으로 인해서 본래의 마음이 나온 것 같아요.”
학벌이며 외모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는 현정이 ‘모태 솔로’가 되었던 것은 부모님과 동생 현숙(채시라)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엄마 순옥(김혜숙), 어린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가지고 결국 이혼하게 된 현숙을 보며 현정은 점점 사랑과는 멀어졌다.
“문학이를 만나서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현정이도 얼마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겠어요. 자신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을 거예요. 처음 현정이가 문학이에게 마음을 열었던 계기는 현정이 임신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 받을 때인 것 같아요. 모두 문학에게 눈총을 줬는데 그냥 아무 변명도 하지 않잖아요. 나중에 왜 얘길 안 했느냐고 물으니 ‘현정 씨가 아이를 가졌다면 그 아이까지 케어해야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때 마음을 열게 됐을 것 같아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길 털어놓고 울음을 터트리는 것. 그게 현정의 진심이고 짐을 내려놓는 시발점이 됐죠.”
현정의 ‘첫 키스’처럼, 도지원에게도 현정은 처음을 선물한 캐릭터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손창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상대 배우인 손창민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보였다.
“역시 손창민 선배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기에 있어서 어찌나 철두철미하신지요. 잠을 안 자고 연기에 대한 분석을 해오는 분이에요. 하지만 저는 약간 반대거든요. 상황에 몰입해서 연기하다 보니 선배가 계산해온 연기와 조금 엇나가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선배가 제게 많이 맞춰준 것 같아요. 계산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즉흥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부분들이요.”
자신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도지원을 위해 연기 스타일을 바꾸는 남자. 도지원은 아낌없이 손창민을 칭찬하면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전부 손창민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주변에서 그런 얘길 해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 제일 편안해 보인대요. 다 놔버리고 연기한 기분이 들어요. 그건 연기생활 하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였거든요. 저라는 사람에 대한 답답한 부분들이 많이 해제될 수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제가 편하니까 보는 이들도 편안해하고 공감해 주더라고요.”
오랜 연기 생활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그대로였다. “정체되지 않고 흐르고 싶다”는 그는 늘 새로운 연기와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땐 그냥 도지원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발전 없이 한 곳에 머무르게 됐었어요. 어느 날 드라마를 하다가 깨닫게 됐죠. 난 어떤 배우야 돼야 할까 고민했어요. 계속해서 저 자신을 탈피하고 깨부수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그러다 ‘여인천하’를 만나게 된 거예요. 이후 비슷한 캐릭터만 들어왔고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됐죠. 그러다 ‘앞을 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곳에 있는 게 아니라 꾸준히 변화하자는 마음이요. 그런 생각으로 10여 년의 세월과 힘든 일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다양한 캐릭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