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 지난달 15일 저녁 13년 만에 최악의 황사가 미세먼지와 함께 중국 베이징(北京)을 덮쳤다. 베이징 기상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 베이징 일부지역의 미세먼지(PM 2.5)농도는 1000㎍/㎥를 넘어섰다.
심각한 스모그나 황사, 기준치 수백 배의 미세먼지가 이제는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대기질 악화는 심각하다. 매해 봄이면 미세먼지를 머금은 황사가, 난방 공급이 시작되는 겨울이 오면 숨쉬기 조차 힘겨운 희뿌연 스모그가 베이징 등 중국을 습격한다. 방독면을 쓰고 웨딩 촬영을 하고 마라톤에 참가하는 등 각종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대기질의 급격한 악화에도 반사이익은 있다. 미세먼지를 줄이고 숨 쉴 수 있게 도와주는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수혜자가 바로 공기청정기 시장이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소득수준 개선에 따른 중산층 급증, 대기질의 급격한 악화, 건강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숨 쉴 수 있는 권리를 돈 주고 사려는 중국 소비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기청정기 보급률이 낮은 것도 막대한 잠재력을 의미한다.
▲ '스마트'한 삶 아닌 '살기 위한' 수요
최근 중국을 비롯한 각국 소비 트렌드는 ‘스마트’에 집중된 모양새다. 스마트TV, 스마트폰, 스마트자동차, 스마트홈 등등 의식주가 해결되자 보다 나은, 편리한 삶에 대한 니즈가 늘어난 때문이다. 수요가 커지자 시장도 급속도로 팽창했다.
하지만 중국의 공기청정기 판매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수요가 아닌 예전만큼 살기 위한, 혹은 건강히 살기 위한 생존 수요가 이끌고 있다. 중국 하늘이 일년내내 쾌청하지 않는 한 유지되고 지속적으로 늘어날 시장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공기청정기에 무관심했던 중국 소비자들은 최근 급증하는 스모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공기청정기 시장의 성장세도 가히 폭발적이다.
중국 가전시장 전문조사기관 중이캉(中怡康)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규모는 31억 위안(약 5400억원)에서 2013년 85억 위안(약 1조5000억원)으로 무려 3배 가량 늘었다. 판매대수도 2012년 126만대에서 2013년 353만대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시장규모는 이 보다도 한층 커진 136억 위안(약 2조3682억원)에 육박했다.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은 2020년까지 연평균 48%의 급격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야말로 쑥쑥 자라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이다.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 성장잠재력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보급률에서도 확인된다. 중국의 공기청정기 보급률은 1~2% 수준으로 미국의 27%, 일본의 20%, 한국의 12% 등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
▲ ‘눈 앞의 거대한 떡’ 몰려드는 기업, 이미 레드오션?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눈 앞에 두고 뒤돌아서기란 어려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너도나도 달려드는 게 인지상정.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의 현재가 바로 그렇다. 엄청난 잠재력을 본 기업들이 앞다퉈 공기청정기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기업간 경쟁도 가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0년 50곳에 불과했던 중국 시장내 공기청정기 기업은 2011년에 100개를 돌파, 2012년 200개, 2013년에는 300곳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400곳 이상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은 크게 △기존 국내 공기청정기업체 △중국 가전업체 △ 해외 공기청정기업체 △ 인터넷기술(IT) 기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최근 중국 가전업체와 IT 기업의 시장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을 시작으로 중국 대표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 하이센스(海信), 메이디(美的), TCL 등이 공기청정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메이디는 지난해 8월 단순 에어컨 제조업체에서 실내 공기를 책임지는 ‘공기 서비스 업체’로 변신을 선언했을 정도다.
중국 AUX(아오커스)그룹은 올초 에어컨 사업부를 핵심으로 하는 아오커스가전그룹을 따로 구성, 공기청정기 시장 확대에 나섰으며 거리(格力)에어컨도 산하의 Tosot(大松)전기를 통해 공기청정기와 정수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 인터넷 기업도 공기청정기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기존의 공기청정기에 최근 시장 트레드인 '스마트함'을 더하겠다는 것. 지난해 3월 인터넷보안업체 치후(寄虎)360이 가전업체 TCL과 손을 잡고 첫 공기청정기를 출시했으며 7월에는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이자 스마트폰 시장의 거두로 떠오른 레노버(聯想)가 산하 인터넷 자회사가 개발한 공기청정기를 시장에 선보였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샤오미(小米)도 지난해 10월 초저렴 스마트 공기청정기 미에어를 선보였다.
IT기업이 공기청정기 시장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뭘까. 우선 성장잠재력이 큰 공기청정기 시장에서의 수익 창출 기대감이 가장 큰 배경이다. 공기청정기의 수익률도 기타 가전제품에 비해 월등히 높다. 컬러TV, 에어컨 등의 대형가전 수익률이 15%, 30%에 못 미치는데 비해 공기청정기 수익률은 50% 이상에 육박한다. 여기에 공기청정기는 최근 IT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스마트가전(홈)' 시장 공략과도 일맥상통하고 가전제품 중에서도 기술 등 진입 문턱이 낮은 것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해외브랜드도 발빠르게 중국 시장 확대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지난해 9월 일본 후지쓰는 필터교환이 필요없는 공기청정기 신제품 첫 출시 지역으로 상하이(上海)를 선택했다. 11월에는 미국 유명 온수기 업체 에이오스미스(A.O.Smith)가 올 1분기 중국 시장 공기정청기 출시를 선언했다.
공기청정기 시장의 신규진출 주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시장은 일부 브랜드가 독식하는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상위 10위권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72%에 달하며 특히 해외브랜드가 강세다. 나머지 24.1% 시장을 두고 수많은 신규업체가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터넷소비조사연구센터(ZDC)에 따르면 2015년 1월 기준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 선호도 1위는 21.4%를 기록한 일본의 샤프(Sharp)가 차지했다. 미국의 필립스와 중국의 샤오미가 11.5%, 7.7%로 2,3위를 스웨덴의 라이트에어와 일본 파나소닉이 각각 7.07%, 6.2%로 5위권에 들었다.
▲ 2015년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은?
지금까지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의 급속한 발전은 △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스모그의 빈번한 출현 △ 주민소득수준의 꾸준한 제고 △ 전자상거래 시장 활성화에 따른 온라인 판매 급증 등이 견인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중국 21세기경제보도(世紀經濟報道)는 올 초 열린 ‘중국공기청정포럼’에 참석한 200여 업체 및 300여명의 전문가 발언을 바탕으로 향후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의 예상 흐름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우선 2015년에도 공기청정기 시장 성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공기청정기 판매량과 시장규모는 각각 전년대비 58.4%, 52.6% 급증한 917만대, 208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소비자들이 조금 비싸더라도 고품질제품을 선호하는 만큼 수입브랜드의 ‘승승장구’는 당분간 계속되고 중국 대표 가전업체 하이얼과 거리, 메이디 등이 서서히 기술력을 갖추며 시장 파이를 장악해 갈 것으로 보인다.
샤오미가 파격적으로 내놓은 899위안 초저렴 공기청정기의 인기는 계속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됐다. 저가 중국산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제품에 대한 신선함과 호기심이 사라지면 시장확대에 한계가 오리라는 것이다.
중국 공기청정기 시장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판단되는 ‘환경기준’은 올해 안에 확정될 전망이다. 올해 안에 당국이 공기청정기 환경기준을 통일하고 이에 따라 1,2,3등급을 명확히 표시해 소비자가 공기청정기 기능을 제대로 파악,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가 시장판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기존에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제품 대다수가 상대적으로 성능이 뛰어난 수입제품인 것이 그 이유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