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 송인상 고문, 호암 이병철 회장에게 “직원 공채하면 어떻겠느냐” 권유

2015-03-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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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오른쪽)과 회남 송인상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회장이 1983년 효성그룹 신년하례식에 참석해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효성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비바람 헤치며 나아갈 땐 머리를 높이 치켜들라. 어둠을 두려워 말라. 네 꿈이 바람에 흔들리고 휘날릴지라도 가슴 깊이 밝은 희망을 안고 전진 또 전진하라. 그대는 결코 홀로 가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공직자에서 기업가로 변신한 회남 송인상 효성그룹 고문(초대 재무부 장관)은 신입사원들에게 강연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증손자 같은 신입사원 앞에서 한국이 경제강국으로 일어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회남은 강연 끝 무렵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쓴 브로드웨이 뮤지컬 ‘회전목마(Carousel)’에 나오는 시 구절을 읽어주곤 했다. 젊은이들이 꿈을 갖고 전진하라는 뜻이였다.
지난 2012년 발간된 평전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을’에서는 회남이 남긴 업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를 양성한 것이라고 전했다. 회남은 “인재란 무엇이든지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원조자금으로 물고기만 사왔다면 오늘날의 경제성장은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인재를 발굴해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원조가 끊어진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라 경제를 키울 수 있다고 믿었다.

정부내 이코노미스트를 키우기 위해 관행을 깨고 해외파 직원을 대거 영입했고, 정부 관료를 해외로 파견해 연수받고 올 수 있도록 길을 개척했다. 특히 한국은행에서 공채를 시도해 성공한 경험을 살려 재무부 장관 시절 대한민국 최초로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공개 채용한 것은 정치권의 인사청탁이 만연하던 당시에는 혁신 그 자체였다.

삼성이 공채를 실시하게 된 데도 송인상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 초창기 국내 기업이 다 그랬듯이 삼성은 필요한 사람을 수시로 채용했다. 이 때 회남은 호암 이병철 회장에게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응시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며 “공채를 하면 시골에서도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삼성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인재제일주의를 지향하는 호암은 이를 받아들여 1957년 국내기업 최초로 삼성의 공채가 시작됐다.

삼성이 공채를 실시하자 전국 각지에서 인재들이 모여 들었다. 오늘날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데는 일찍이 인재를 발굴해 키운 덕분이다.

호암도 자서전 ‘호암자전’을 통해 “삼성이 공채제와 연수제를 도입했던 1950년대 중반에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경제·사회가 아직 성숙되지 못했고, 사기업이 공채를 통해 1급 인재를 구할만큼 기업 자체가 성장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채를 통해 일류학교의 수재를 모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오늘의 삼성이 있게 됐다”고 전했다.

또 학교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대와 미국 미네소타대와의 제휴를 성사시켰고,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당시에는 전무했던 경영학과를 연세대와 고려대에 처음 신설토록 한 것도 회남의 노력 덕분이었다. 능률협회(KMA) 회장을 지낼 때도 회남은 인재양성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회남 송인상 효성그룹 고문이 2004년도 효성그룹 공채 신입사원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효성그룹 제공]


한국수출입은행 행장을 끝으로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려던 회남이 기업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사돈인 만우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룹경영에 참여해 사위 조석래 사장(현 효성그룹 회장)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회남은 1980년 2월 송인상은 효성그룹의 주력인 동양나이론(현 (주)효성)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된 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동양나이론 재직 시절 회남은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무엇보다 동양나이론을 경영하며 우수한 인재가 민간기업에 많음을 발견하고 놀랐다. 공장을 시찰할 때마다 브리핑하는 직원들의 자신있고 당당한 태도에 감탄했다. 기업이라는 것이 항상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진지했다.

회남은 당시 동양나이론이 섬유 중심에서 경영다각화를 통해 하루빨리 첨단산업·신소재 같은 새로운 분야로 확장하고 변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도전과 혁신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갔다. 회남과 임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현재 효성그룹은 타이어코드를 비롯해 첨단소재 부문에서 세계 1위 기업의 지위에 올랐다.

회남은 나라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업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요청으로 전경련 부회장을 맡았고, 전경련 산하 씽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했다.

한국능률협회(KMA) 회장으로 부임하던 1989년에는 순수 민간 주도의 경영컨설팅 전문기관인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을 창립해 국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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