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균이 악역만 맡아 온 것은 아니지만 워낙 강렬한 역할에 ‘전직’을 의심케 하는 메소드 연기까지 더해져 ‘악역 전문배우’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우리는 형제입니다’(감독 장진)와 ‘허삼관’(감독 하정우),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에서 보여준 순박함, 평범함, 명민함은 자꾸만 기억에서 뒷걸음질친다.
인간 김성균은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성품을 칭찬한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그는 변신한다. ‘살인의뢰’(감독 손용호·제작 미인픽쳐스)의 승현 또한 김성균의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다. 손에 칼을 들지만 악역이라 잘라 말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배우들이 그러잖아요. 캐릭터에 빠져 힘들다고. 저는 그걸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느껴지더라고요. 연기를 통한 경험인데 진짜 제 기억 속 경험처럼 남아 있었어요. 마치 악몽을 꾸고, 생생한 기억에 몸서리치듯 현장에서 느낀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라고요. ‘몰입한 나머지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힘들었다’는 말을 ‘살인의뢰’를 통해 처음 실감했어요.”
김성균은 영화를 찍으면서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와이프랑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났죠. 가족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어요. 사랑했던 아내와 가족을 잃은 승현의 마음을 더 깊이 알 수 있었던 건 결혼하고 애들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큰애가 있고, 둘째를 임신하면서 배우 김성균이 아닌 인간 김성균의 일상이 바뀐 거잖아요. 많은 일들이 생긴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더 힘들었죠. 내가 진짜 우리 가족을 잃으면 어쩌나? 그런 불안함이 섞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 영화는 ‘가족영화’입니다(웃음).”
“둘 다 편하지는 않아요. 가해자 때가 좀 더 기분이 나쁘죠. 누군가를 해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마음으로 연기하기가 더 힘들어요, 그 마음을 모르니까요. 그런 인간들의 이미지를 위해 사진을 많이 봤죠. 살인범들의 사진을 보고 풍기는 이미지를 연구했어요. 피해자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유추하며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더라고요. 실제 피해자의 가족분들은 상상을 초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버거웠죠. 어떤 지옥일지. 다큐를 많이 봤는데,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피해자 가족이 자신의 아이를 희생시킨 누군가를 잡지 못하는 판국에 공소시효로 죄가 없어지는 상황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꼈어요.”
김성균은 ‘살인의뢰’에서 박성웅과 피해자, 가해자 사이다. 평소 박성웅은 출연진과 끈끈하게 지내기로 유명하다. 단체 카톡방을 앞장서 만들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으며 촬영에 임할 수 있게 분위기를 푼다. 이번에는 달랐다. 역할에 대한 무게감 때문인지 현장에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김성균 역시 사건의 실마리가 될 야산신에서만 잠깐 만났다. 그때도 굉장히 묵묵하게, 연기하지 않는 순간에도 말없이 지냈단다.
김성균은 박성웅이 연기한 조강천이란 캐릭터에 대해 “교도소에서 자기 몸만 만들고 있는 절대악으로 그려졌다. 살인범의 내면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장치가 없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저는 영화에서 살인범은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비슷한 역할보다는 다양한 캐릭터가 들어오는데 감독님들이 실험을 해 보고 싶어하시는 게 아닐까요(웃음)? 제 능력이 많지가 않은데 골고루 시켜 주시는 것 같아요. 다들 실험정신이 강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연출의 첫 덕목은 캐스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를 잘 캐스팅 하셨다는 말은 아니고요. ‘응답하라 1994’도 그렇고 ‘살인의뢰’도 마찬가지인데 배우들이 모여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가 컸던 것 같아요.”
작품복도, 인복도 많은 김성균은 전윤수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여름에 내리는 눈’을 끝내고 ‘명탐정 홍길동’(감독 조성희)을 촬영 중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김성균은 악역 전문 배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