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조현미 기자 = 녹십자가 일동제약에 이사회 참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동제약의 지주회사 전환 건으로 갈등을 빚은 지 1년 만에 경영권 분쟁이 재현되는 것이다. 일동제약 2대주주인 녹십자는 지난해 1월 다른 주주와 손잡고 일동제약 지주사 전환을 무산시킨 바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녹십자는 지난 6일 일동제약에 주주제안서를 발송해 다음 주주총회에서 자사가 추천하는 인사의 이사 선임을 요구했다.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을 지닌 주주는 이사 선임, 액면 분할 등의 안건을 주총에서 논의하도록 회사 측에 제안할 수 있다. 회사는 이 제안이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되지 않으면 이사회 결의를 거쳐 주총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
녹십자의 이번 행보는 2012년부터 제기돼 온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을 다시금 부추키고 있다.
녹십자는 2012년 환인제약이 가진 일동제약 지분 7%를 인수하며 M&A설을 불러 일으켰다. 앞서 상아제약, 경남제약을 인수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월엔 개인투자자 등이 보유한 일동제약 지분 14%을 추가 매수하며 지분율을 29.36%까지 끌어올리며 2대주주로 올라섰다. 나아가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꿨다.
녹십자는 곧바로 일동제약이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지주회사 전환을 무산시키며 힘을 과시했다.
일동제약이 지주사 전환을 위해 지난해 1월 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녹십자는 9.99% 지분을 가진 피델리티펀드와 손잡고 이를 부결시켰다.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이 임시주총을 앞두고 직접 기자들을 만나 녹십자와의 친분을 강조했지만 모두 헛일이 된 것이다. 윤 회장과 녹십자 창업주인 고(故) 허영섭 회장은 이웃사촌이다. 현재 녹십자를 이끌고 있는 고 허 회장의 동생 허일섭 회장과도 친분이 있다. 윤 회장의 아들 윤웅섭 사장과 허영섭 창업주의 아들 허은철 사장은 고등학교 동문이다.
녹십자는 지주사 전환을 무산시킨 임시 주총 이후 추가로 지분을 매집하는 등의 행보는 보이지 않았다.
업계는 녹십자의 이번 주주제안권 행사가 그간 잠잠했던 적대적 M&A에 시동을 거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녹십자와 일동제약 윤원영 회장 등 최대주주 측(32.50%)과의 지분율 차이는 3.1%포인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양사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녹십자 관계자는 “주주로서의 당연한 요구일뿐 적대적 M&A의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일동제약 측도 “비슷한 지분 구조의 회사 사이에서도 일반적인 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