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진순현 기자=탁상행정에 순박한 제주 농민들의 가슴에 생채기가 나고 있다.
최근 몇 년에 걸쳐 제주 양배추 농가는 피땀 흘려 가꾼 양배추를 “갈아 엎고, 헐값에 보상받는” 시장격리(산지폐기)에 의존하고 있다.
양배추 생산농가 A씨(76)는 25일 “약 2500평 신고된 양배추 산지폐기 중 300~400여평에 대해서는 남겨두라 한다. 머리 짜르다 일부 남겨두라 말과 똑같다”고 비유했다.
이에 농협 관계자는 “A씨의 경우 제주시농협 조합원으로 조합원 중 양배추 산지폐기 면적 15ha에 2ha만 시 농협이 할당 받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 다른 곳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즉 “300~400평에 대해서는 농협도 책임 없고 팔든 못 팔든 농민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제주시 농협 양배추 재배면적 부풀려진게 아닌가?
A씨는 양배추 재배 면적에 대해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의혹이 든다” 고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20일까지 양배추 산지폐기 신고를 앞둬 신고절차 과정에서 동사무소→읍사무소→시청→도청을 방문 및 전화통화 후 농협이 신청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18일 제주시농협 경제상무 H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시 조합원은 주로 감귤농가 등이지 양배추 농가가 2~3곳 남짓하다. 그래서 시 농협 입장에서는 양배추 산지폐기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고 말해 비협조적이었다는 것. 평균적으로 15ha라면 제주시농협 조합원 여건상 최소 10명 이상이 예상된다.
도는 이번 양배추 산지폐기 사업에 당초 사업목표량 300㏊보다 2배 이상이 신청했다고 밝혔다. 접수 결과 807농가 618㏊가 신청, 318㏊ 초과한 것으로 조사돼 행정이 사업에 따른 분석에 미흡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고 붙이고, 공문 보내면 행정은 '나몰라라'
또다른 B씨(74)는 “밭데기(포전) 3.3㎡당 500원을 놓고 행정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주도는 조기 시장격리를 위해 22억5000만원 투입, 재배신고 농가의 포전은 3.3㎡당·2500원을, 미신고 포전은 신고포전의 80%인 3.3㎡당·2000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문제는 재배 포전 ‘신고의 기준’이 무조건 지난 9월께 각 읍면 ‘양배추 재배 신고한 자’에 따랐다.
‘미신고’자는 3.3㎡당 2000원으로 500원의 손해가 입힌다.
이 과정에서 일선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드러났다.
애월읍 관계자는 “리사무소에 공고를 부쳤고, 리사무장에게도 통보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의 한계” 라며 “B씨 뿐만 아니라 같은 이 지역 여러 사람들이 신고 과정절차에 대해 불만을 갖지만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왜 그때 신고를 하지 않았나. 더 이상 해줄게 없다. 그때 못 챙기걸 어떡하냐”고 오히려 따졌다.
특히 B씨는 같은 리지역 농가도 신고하지 못해 3.3㎡당 500원이 손해를 보는 있는데 더 더욱 어쩔수 없다는 것.
B씨의 경우 양배추 밭은 애월지역에 있지만 거주지가 제주시내라 미처 알지못해 미신고 대상이 됐다.
B씨는 “양배추 묘종 관리하고 물 준다고 8~9월까지 거의 밭에 살다시피 했지만 읍에서나 리사무소 담당자 누구 한번 본 적이 없다” 며 “그리고 굳이 리사무소 갈일도 없는 게 현실 아니냐. 요즘 귀농, 주말농장 등 농사꾼 편가르기를 공무원들이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B씨는 특히 “지금까지 1~2년도 아니고, 무려 10여년을 줄곧 양배추만 심어온 밭이다. 누가 산지폐기 원해서 하는 줄 아느냐. 눈물을 머금고 억울해도 농약 값이라도 갚을 요량으로 하게 됐다” 며 “리사무소에 공고 부쳐놓고 내 할 일은 다했다. 이게 말이되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B씨는 덧붙여 “농산물품질관리원과 농협에는 해마다 양배추 농가란 기록이 남아있다. 올해도 유선상으로 양배추 심는다는 말을 전했다” 며 “이처럼 양 기관은 농사 파종 전 시기마다 꼭 조사를 해온다. 어찌 도 행정만 아무런 근거없이 그때그때 끼어맞추기식 조사를 하고 그게 전부인양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는 직불제 보상때와 달리 도, 시·읍면동, 농협, 농산물품질관리원 등과 유기체계가 전혀 배제됐다.
한편 올해 가뜩이나 한중FTA 타결 이후 감귤값 하락, 월동채소 처리난 등 제주 1차산업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행정이 성난 농심을 어떻게 달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