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다시 변화와 실험에 섰다. 지천명이 된 그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질문들이 정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는데 이 전시를 통해 극복하게 됐다”고 했다.
일상의 공간에 주목하던 동양화가 유근택(50)이 2년만에 여는 전시에 '산수'연작을 선보인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OCI미술관 1층 벽면에 ‘산수’ 10점을 병풍처럼 둘렀다. 산수화 작업은 해왔으나 개인전에서 소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산수화는 독특하게 전시됐다.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이게 결려 고개를 들어 산수풍경을 쳐다보게 한다. 사방의 벽에 가로로 길게 걸려진 그림들은 호수위의 하늘과 산수풍경이 수면위에 투명하게 겹쳐 데칼코마니같은 느낌을 풍긴다. 검게 칠해진 전시장은 마치 허공같은 그림속에 있는 착각까지 선사한다.
작가는 “21세기 동양과 서양문화가 어떻게 충돌하고, 서양문화가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며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된, 비빔밥 같은 세상을 화면에 담아봤다”고 말했다.
가로 2.7m, 세로 1m 크기의 이 '산수'연작은 충북 충주, 제천 단양군에 걸쳐있는 인공호수,충주호의 풍광이다.
기이한 겸침의 산수풍경은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 작가가 학생들과 수학여향으로 충주호에 방문했을때 물이 빠져 흉측해진 풍경아래에서 방문객들이 여흥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낯설고 기괴한 느낌에서 비롯됐다.
아름다운 경치와 그것이 뒤집힌 장면이 동시에 담긴 산수풍경은 실제와 허상, 진실과 거짓, 정상과 비정상이 충돌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투사이기도 하다.
OCI미술관 최정주 수석큐레이터는 "산수라는 소재는 동양미술의 핵심을 이루는 관념적 대상이자 개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무게가 중첩되어 있는 하나의 장"이라며 "유근택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이 어려운 화두를 다루면서 다시 '관념의 현실적 수용'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근택은 30여년동안 화업을 이어오면서 현실에 이어진 동양화를 담고자 노력해왔다. 지필묵 이외의 재료를 선택하며 동양화의 관념성과 정신성의 영역에 시공간의 현실성을 이식할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왔다. 자신과 관계 맺은 체험적 깨우침을 통해 '일상' 속 '지금', '여기'라는 주제에 매진 '동양화의 현대화'라는 해묵은 과제를 푼 작가로 주목받았다.
나이 50이 됐지만 관찰력과 상상력은 낡지 않았다. 전시에 나온 '말하는 벽'이 대변한다. 옛 미대사관 길을 걷다 담벼락 돌들이 수군거리는 듯한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는 작가는 가로 1m 80cm, 세로 2m 크기에 차곡차곡 박힌 돌벽을 담아냈다. 우리사회와 개인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중의적 관점은 '분단'이라는 키워드까지 확장되는 그림이다.
한지와 수묵이외에도 호분, 아크릴, 과슈, 콘테, 템페라 등으로 ‘모필 소묘’한 그림은 꿈틀거리듯 강렬한 느낌을 전한다.
'끝없는 내일'(Everlasting Tomorrow)이라는 타이틀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현실의 평범함, 비루함과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끝없이 지속되는 우리 삶의 기묘한 순환 구조를 상징하고 있다. 내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 (02)734-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