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우리가 어떤 인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한시적이고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업은 환상과 환영, 착시효과를 준다. 일상적이고 친숙한 공간을 전복시켜 실재와 환상 사이의 모호함을 부각시키는 작품들을 통해 현실에 대한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언어를 구축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박스프로젝트작가로 선정되어 펼친 작업도 뚜렷함과 모호함이 공존한다. 서도호의 '푸른 집'을 내보내고 '배'를 선보인다. 빨강 노랑 파랑, 6척의 배들은 마치 항구에 정박해있는 듯한 느낌이다. 검은 바다와 가로등까지 설치되어 멀리서 보면 한폭의 근사한 입체 풍경화처럼 보인다. 전시장에 6m 높이의 벽을 세우고 검정 카펫을 벽면과 바닥에 덧대 깊은 물 속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덧없음을 시적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가까이서 보면 참 덧없고 놀랍다. 배와 배사이는 허공이다. 바다같은 공간은 거대한 블랙홀처럼 검은 입을 벌린 듯한 공포감까지 선사한다.
가로 23m, 세로 23m, 높이 17m의 전시장은 항구처럼 보인다. 작품의 제목은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위아래가 붙은 배처럼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환영이 결합돼있다.
전시장 1층과 지하 1층에서, 혹은 전시장 외부에서 감상하는 것에 따라 관람객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실재와 환상의 틈이 줄어들기도 하고 그 사이의 모호함이 배가되기도 한다.
작가는 “환상이나 환영이라는 이면에는 인식과 인지가 있다. 내가 주로 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현실과는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픽션"이라며 "현실 자체도 굉장히 가변적이고 그것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작품은 작가의 환경이 지배한다. 그는 전시 제안을 받고 생각했다. 아르헨티니와 한국은 끝과 끝. 서로 지구 정반대편에 있다는 데서 착안했다. 작가는 "항구와 배는 오래전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통로였다"며 작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거주하는 작가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작업하러 가고자 매번 2시간30분가량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고 한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이 이번 작업의 바탕이 됐다.
작가를 떠난 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해석의 여지가 달라진다. 작가가 꿈처럼 몽환적이면서 서정적인 풍경으로 배 작품을 내놓았지만 한국의 관람자들은 '배'를 보는 느낌이 서정적이지는 않다.
지난 4월 벌어진 세월호 참사가 연상될 수밖에 없다. 또한 박스프로젝트가 한진해운의 후원 연결성이 이어졌을까도 궁금했다. 작가는 "우연의 일치"라고 강조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 2월이어서 그 비극(세월호 사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작품이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면 그 역시도 작품의 일부"라고 했다.
"자신이 가진 경험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죠. 작품을 보는 것은 수학 공식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술에서는 2 빼기 2가 0은 아니니까요. 그런 점에서 누군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작품 구상부터 제작, 운송, 설치까지의 과정과 작가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된다. 전시는 내년 9월 13일까지.(02)3701-9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