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부원 기자 = 11월 말부터 차명거래금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기존 금융실명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관심이 높다. 과거 규정만을 생각하고 있다가는 자칫 5년 이하 징역 내지 5000만원 상당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도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세무사 등에 차명거래금지법의 내용과 대응방안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 일찌감치 차명계좌를 정리하고 자산을 재분배한 자산가도 있지만 시행일이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차명거래금지법에 대한 문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차명거래란 금융자산의 실제 소유자와 형식상 명의자가 다른 금융거래를 말한다. 즉, 자신의 명의가 아닌 타인의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에는 저축을 통한 경제성장이 당면 과제였기 때문에 비실명 거래, 즉 차명거래를 명시적으로 허용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 사건인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이 발생하면서 차명계좌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렇지만 경제적 부작용 등의 이유로 10년 이상 현실화되지 못하고 지연됐다.
지난 1993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과의 모든 금융거래에서 가명이나 차명 등을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김희규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가명이나 무기명 거래가 금지됨에 따라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차명계좌 개설 금지 조항이 없어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만 합의하면 차명거래가 허용됐고, 이로 인해 범죄형 차명거래 제재 방법이 없는 문제점이 남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는 조세포탈, 비자금 조성, 자금 은닉 등의 불법적인 차명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금융실명제법을 손질했다. 이어 지난 5월 '차명계좌 사용을 금지하는 금융실명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차명거래금지법, 기존 금융실명제와 어떻게 다른가
금융실명제법 개정 이전에도 금융거래자의 차명거래는 타 법률과 제도 등으로 규제가 가능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FIU법) △조세범 처벌법 등에 의한 처벌 규정은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보다 높은 규제를 반영하기 위해 정부는 금융실명제법을 개정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차명계좌의 재산 소유권이 '계좌 명의자'에게 있다고 추정하는 원칙과 계좌 명의자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가 합의하면 차명거래가 허용된다. 대법원 판례도 이 경우 실소유자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재산은 명의자의 재산으로 간주되며, 실소유자의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송을 통해 권리구제를 받아야 한다. 만약 불법 행위를 목적으로 실명제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은 세금과 가산세 추징만 있고 형사처벌의 제제가 없었던 이전과 달리 개정안은 명의를 빌려준 사람도 함께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계좌의 실소유자와 명의자는 물론 금융기관 종사자 모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불법 차명거래를 중개한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과태료도 기존 500만원에서 3000만원 이하로 6배 상향 조정됐다.
기본적으로 차명거래금지법은 불법·탈법적 목적인 차명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범죄 목적이 아닌 가족 간 차명거래, 동창회 등 '선의의 차명계좌'는 허용된다. 다만 친족 사이라 하더라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절세를 위한 가족 간 차명거래는 차명거래금지법에 저촉된다.
김 연구위원은 "선의의 차명계좌는 실명 전환을 할 필요가 없지만 앞으로 차명계좌 소유권은 명의자에게 있다고 추정되는 만큼 차후 발생 가능한 소유권 분쟁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