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애널리스트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고액연봉에 솔깃해 증권사에 입사했다. 25년 동안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부터 삼성증권, 굿모닝증권(현 신한금융투자), UBS증권, HSBC증권, 모건스탠리까지 국내외 증권사를 두루 거쳤다.
강관우 대표는 연초 임홍빈 전 아이엠투자증권 리세치센터장과 의기투합해 올라FN을 설립했다. 임 대표는 삼성전자 주가가 30만원대에 머물던 시절, 100만원 시대를 처음 예언해 유명해진 인물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토종 된장'이라 일컫는 강관우 대표는 1965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을 계기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고, 가정을 책임지셨던 어머니 아래에서 독립심 강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강관우 대표는 '악발이'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대 학번인 그는 당시로는 드물게 6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았고, 집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첫 직장은 동원증권이었다. 국제부로 배정을 받은 뒤 해외증시 동향 보고서를 쓰는 일을 했다. 부서 막내로 허드렛일부터 도맡아야 했고, 하루 600~700쪽이 넘는 보고서를 인쇄하고 돌렸다.
1992년 한국 자본시장 개방에 맞춰 새로 조사팀이 꾸려졌고, 강관우 대표는 이 부서로 옮긴다. 처음으로 명함에 애널리스트라는 직함을 넣었다.
조사팀에서 영어로 보고서를 작성했고, 외국계 투자자와 만나게 됐다. 해외출장도 수없이 다녔다.
강관우 대표는 "당시 건설업종을 맡고 있었는데 해외지사에서 3개년 추정 보고서를 요구했다"며 "그런 일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억지로 하면서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분석력을 인정받아 HSBC증권으로 옮기게 됐다. 이후 UBS증권, 삼성증권, 굿모닝증권, 모건스탠리증권을 차례로 거쳤다.
특히 삼성증권에서는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해마다 이름을 올렸다. 굿모닝증권에서는 최연소 헤드를 맡기도 했다.
한때 이룸투자자문 창립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으나 3년 만에 관뒀다. 2013년에는 SBS CNBC에서 아침 시간대 경제방송을 진행했다.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 온 강관우 대표는 후배 애널리스트에게 '경험을 두려워 말라' 그리고 '사람을 넓게 사귀라'고 조언한다.
강관우 대표는 "동원증권에서 보고서를 출력하다가 프린터를 고치는 일도 자주 했는데, 살다보니 이것도 많이 도움이 됐다"며 "안 된다 말하지 말고, 일단 해보고 그 다음에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