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 조치에 본격적으로 ‘반격의 칼’을 꺼내 들었다. 얼마전 우크라이나 국경 군병력을 증강한 데 이어 이번에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의 농산물과 식품 수입을 금지하는 ‘보복안’을 내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이하 현지시간) '국가안보 보장을 위한 개별 특별경제조치 적용에 관한 대통령령'을 통해 "러시아 법인과 개인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했거나 그에 동참한 국가에서 생산된 농산품, 원료, 식품 등의 수입과 관련된 대외활동을 1년 동안 금지하거나 제한한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제재 목록엔 미국산 농산물 전량과 일부 축산물, EU의 채소·과일류가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7일 브라질, 에콰도르, 칠레, 아르헨티나 대사를 불러 농산물 수입 수요를 이들 나라로 전향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미국 백악관은 “러시아의 이 같은 조치가 자국 경제에 스스로 타격을 입히고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또한 푸틴의 식품 금수 조치가 실행되면 유럽과 미국의 농가나 식품 수출업자에게 큰 타격을 주는 동시에, 러시아에서는 인플레율이 더욱 높아지고 일부 식품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농산물 수입국 중 하나인 만큼 이번 러시아의 보복조치로 미국과 유럽의 관련 업계 또한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그 가운데 맥도날드에 이어 또 다른 미국 대표 기업인 코카콜라가 러시아의 두 번째 ‘제재 분풀이’ 대상으로 낙점 됐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중국 신화망(新華網)는 러시아 경제지 ‘코메르산트’를 인용, 8월부터 러시아 국영방송 REN TV, 채널 5(Channel 5) 등 러시아 4개 주요방송채널에서 코카콜라 광고가 사라졌다고 6일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조치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으나, 코카콜라 측은 광고비 예산 등 ‘경제적인 결정’일뿐 서방의 제재조치와는 관련이 없다 반박하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 당국은 위생기준 미달을 이유로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의 일부 제품 판매금지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여러 외신들은 러시아가 과거 외교적 분쟁 시마다 보복성으로 상대국 식료품 금수조치를 내려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맥도날드를 서방의 러시아 제재조치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서방이 대(對)러시아 추가제재조치를 발표한 뒤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 근처 군병력을 2만명으로 증강하며 도발에 나서고 있다. 또 푸틴 대통령은 최근 유럽항공사들의 러시아 영공 통과금지 조치와 우주방위산업 관련 전자부품 수입국을 서방 국가들에서 중국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러시아가 농수산물, 항공, 기업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보복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더욱 거세지는 서방의 제재에 자신들만의 또 다른 제재로 정면 맞대응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하루 전 "정치적 수단으로 경제를 압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는 규범과 원칙에 어긋난다"며 서방 제재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내각에 지시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달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며 러시아를 상대로 금융 제재, 무기 수출 금지, 군수물자 전용 가능 품목 수출입 제한 등을 포함한 일련의 제재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