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육감은 축사를 통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땅에 통일 된 민족,통일된 나라를 만들고 일제의 잔재를 완전하게 청산해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 학생들에게 전해 줄 이 시대 교육의 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올바른 역사교육을 어린이들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1945년 7월 친일파 거두인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이 서울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라는 친일어용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를 저지하기로 결의하고, 7월 24일 유만수·강윤국 등과 함께 부민관에 폭탄 2개를 터뜨려 집회를 무산시켰다.
이후 끼니를 거르는 생활고 속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이름을 올리기를 거부하다가 사위가 몰래 등록해 1982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자 '친일 청산이 오늘의 독립운동'이라는 신념으로 투신했고, 1999년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해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에 전념했다.
2006년 11월 골수종과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8년 2월 5일 사망했는데, 장례는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한 겨레장으로 치러졌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