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중국인에게도 역사적 상처가 어린 곳이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하얼빈에서 '마루타 부대'로 알려진 731 부대를 만들고 생화학전에 대비해 전쟁 포로 등을 상대로 바이러스, 독가스 등에 관한 잔혹한 실험을 했다.
하얼빈의 어원은 만주어로 ‘그물을 말리는 곳’, 몽골어로 ‘평지’, 러시아어로 ‘커다란 공동묘지’, 여진어로 ‘명예’, 퉁구스어로 나루터, 하얼빈 원시어로는 백조라는 뜻으로 매우 다양하다.
하얼빈은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한다. 러시아 정교회인 성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하얼빈에는 유난히 러시아풍 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하얼빈이 현대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컸다. 하얼빈은 러시아가 만주를 지배하기 위한 거점도시였다. 1986년 중·러 밀약으로 러시아가 중동 철도 부설권을 획득해 1903년 만주를 가로 지르는 총 2430km 길이의 중동철도를 부설했다. 중동철도 완공 후 하얼빈은 러시아인과 중국인들이 모여들며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러·일전쟁 당시 만주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 기지였던 하얼빈은 전쟁이 끝날 무렵 일시적으로 중국과 일본이 공동 관리했다. 러시아 혁명 뒤에는 러시아에서 도망친 사람들의 피난처가 돼 러시아인 사회가 형성됐다. 러시아식학교와 러시아어신문도 발행됐다.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만주국을 설립하면서 일본인 수도 늘어났다. 하얼빈은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이 만나는 제국주의의 교차로였던 셈이다. 이후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후 다시 소련군에 의해 점령됐다가 1년 후인 1946년 중국에 반환됐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한때 최초의 신중국 수도 후보지로 베이징이 아닌 하얼빈을 염두에 뒀을 정도로 하얼빈을 중요시하게 여겼다. 하얼빈이 러시아와 가까워 소련의 지원과 도움을 받기 가장 편리한 지리적 위치라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하얼빈은 예로부터 군수공업의 중심지였다. 인근에 중국 최대인 다칭(大慶)유전과 안산(鞍山) 등 대규모 철강산지 등을 토대로 석유화학·철강·기계·발전설비·자동차·조선산업 등 중국의 근대화를 꽃피웠다. 그래서 하얼빈의 대부분 기업은 국영기업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해 이 지역은 늙어갔고 노후 공업기지로 전락했다.
하얼빈 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동북 진흥’ 정책 덕분이다. 2004년 헤이룽장성의 대표적 공업도시인 하얼빈, 다칭(大慶), 치치하얼(薺薺哈爾)을 묶은 '하다치(哈大薺) 공업벨트 개발계획'이 발표됐다. 이 지역을 헤이룽장성의 핵심 성장엔진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하얼빈에서는 동북지역 최대규모의 소비재 박람회인 ‘하얼빈 박람회’도 매년 열린다. 하얼빈 박람회는 지난해까지 '하얼빈 국제경제무역박람회'를 명칭으로 사용하다가 러시아와의 통상교류 확대를 위해 올해부터 국가급 박람회로 승격시켰고 명칭도 '하얼빈 중국-러시아 박람회'로 변경해 운영됐다. 올해엔 쿠쿠 등 우리나라 기업들도 참여했다.
하얼빈은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9월에는 영하 38도의 혹한에서도 견딜 수 있는 지하철이 중국 최초로 개통되기도 했다.
풍부한 강설량 덕분에 겨울철마다 화려한 얼음과 눈, 빛의 향연으로 불리는 빙등제도 열린다. 매년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하얼빈의 '관광효자'다. 하얼빈은 최근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세계 최대규모 해양공원 '포세이돈 오션킹덤'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총 100억 위안(약 1조6000억원)을 들여 짓는 이 테마파크는 오는 2016년 7월 개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