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선미 기자 =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지만 금융지주 및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은 잇따라 휴가를 포기하거나 미루고 있다. 직원들에게는 휴가 사용을 독려하면서도 인수합병(M&A), 민영화, 기업구조조정 등 현안이 쌓인 탓에 휴가다운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코앞에 두고 있는 곳도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휴가를 가지 않기로 했다. 당장 우리금융 민영화와 같은 최대 현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의 마지막 단계인 우리은행 매각에 접어든 만큼 (이 행장은) 올해 휴가계획을 잡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하나은행도 직원들에게 1년에 10일 이상 연차휴가를 의무적으로 쓰는 '프레시(재충전) 휴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휴가계획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행장은 지난 4월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데다 KT ENS 대출사기와 관련한 제재심의도 다음달 진행되기 때문이다. 김 행장은 올 여름을 은행 내 일정과 거래처 방문, 제재심의 대비, 해외출장, 자원봉사 등으로 보낼 계획이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역시 오는 17일과 24일에 제재심의위원회가 예정돼 있어 휴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에다 KB금융은 LIG손보 인수를 위한 실무작업이 진행중이고 그룹 계열사와의 시너지 창출방안을 위한 전략 수립이 한창이어서 물리적으로 CEO가 휴가를 가기 쉽지 않다고 KB금융 관계자는 설명했다.
홍기택 KDB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도 산적한 현안 탓에 휴가를 잡지 못했다. 동부, 현대, 한진 등 대기업 구조조정 현안이 산적한데다 최근에는 팬택의 법정관리 가능성까지 대두했기 때문이다. 임종룡 NH금융지주 회장은 연말로 예정된 우리투자증권 합병작업을 진두 지휘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STX 문제로 나빠진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하반기 전략구상에도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하나은행과의 조기통합을 선언하면서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휴가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수년째 여름휴가 대신 집짓기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대형 금융사 CEO 중에서는 김주하 농협은행장 정도가 휴가를 정했다. 그나마도 현안과 실적부담으로 가지 않으려 했지만 임직원의 강권에 따라 마지못해 휴가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