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환율이 하락하면 구매력을 높여 내수를 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최근 경제상황은 환율이 하락하고 있는데도 내수부진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따라서 오히려 내수 활성화 정책을 펴 환율을 안정시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9일 한국경제연구원과 아시아금융학회가 공동 개최한 '하반기 환율 전망과 대책' 세미나에서 변양규 한경연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최근 환율 하락의 주요 요인일 뿐만 아니라 시장개입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는 사실 내수부진의 결과"라며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변 실장은 "경상수지 흑자는 원화 절상 압력을 높이면서 정부 운신의 폭을 많이 줄여놓았다"며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해 가계부채 상환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정책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실효적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투자심리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가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시그널(신호)을 시장에 보내, 환율의 '오버슈팅(과도한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고 변 실장은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 하락에 대한 장기적 대응방안으로 "해외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 확대도 고민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도 경상수지 흑자에 대응해 해외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금융기술 수준이 낮아 금융회사들이 IB(투자은행)보다는 리테일 부문 중심으로만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면서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율정책으로 내수를 부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금리와 재정정책, 혹은 부동산 정책이나 정부의 규제완화 등 미시적 정책으로 내수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금리 저환율 정책을 썼다 외환위기를 겪었고, 현재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일본은 고환율 저금리 정책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면서 "고환율 저금리 정책을 쓰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통화량을 조절해 간접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일본 아베노믹스의 전략적 환율정책을 배워야 할 사례로 꼽았다.
이날 한경연이 분기별 거시모형을 통해 분석한 결과 올 연말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00원까지 하락하면 우리 경제성장률도 0.2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초 달러당 1050.3원에서 시작한 원화 환율은 추세적 하락세를 보이면서 지난 3일 1008.5원까지 내려앉았다가 현재 1012원선까지 다시 올라선 상태다.
한편 현재의 환율이 고평가돼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아시아금융학회장)은 지난 2010년 이후 올 1분기까지 추정한 원·달러 환율의 중기 균형환율 수준(평균 1124원)에 근거해 최근 환율 수준이 10.2% 고평가됐다고 봤다.
그는 "하반기에 환율이 1000원선까지 하락한다면 11% 고평가될 수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중기적으로 지속되면 1997년과 2008년 같은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