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이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반대했던 데에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거둔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이 주된 이유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홍명보의 ‘의리 축구’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박주영이 있다.
홍 감독은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소속팀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는 선발하지 않겠다’는 대원칙을 세웠지만 박주영 발탁하면서 스스로 그 원칙을 무너뜨렸다. 박주영은 선발 당시 원 소속팀 아스날에서 전력 외 선수로 취급 받았을 뿐만 아니라 월드컵 출전을 위해 급하게 임대 이적했던 왓포드에서조차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홍 감독의 선택은 박주영이었다.
홍 감독의 눈엔 박주영밖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른 공격수들이 홍 감독의 눈에 들지 못했다.
동아시안컵 대회에서 대표팀은 호주(0-0 무), 중국(0-0 무), 일본(1-2 패)을 만나 단 한 골을 넣는데 그쳤다. 게다가 8월에 열린 페루와의 평가전에서도 득점 없이 무승부를 기록했다.
김신욱의 장신을 활용한 전술은 단순한 패턴으로 상대 수비수에게 금방 읽혔고, 서동현은 골문 앞에서 집중력 부족을 노출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김동섭과 조동건도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지만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하며 득점에 실패했다. 자연스럽게 홍 감독의 시선은 박주영에게로 향했다.
당시에도 박주영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박주영이 2011년 아스날로 이적한 후 2014년 1월까지 약 3년 동안 아스날 소속으로 출전한 경기 수는 단 7경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임대 이적한 왓포드에서 조차 한 달 동안 그라운드에서 보낸 시간이 70여 분에 그쳤다.
홍 감독은 고심 끝에 박주영 카드를 빼들었고 박주영은 그 믿음에 보답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던 지난 3월 6일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은 선제골 한 방으로 출전 기회 부족에 대한 경기 감각 우려를 잠재웠다. 순식간에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돌파력과 자신에게 찾아온 찬스를 놓치지 않는 킬러 본능은 홍 감독이 그를 왜 선택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그것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 결과는 감독의 몫이다. 비록 홍명보 감독의 박주영 카드는 ‘1따봉’만 남긴 자충수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는 홍 감독이 낼 수 있는 최상의 패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