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흠짓, 발걸음이 절로 뒷걸음친다. 이걸 어떻게 봐야할까.
얼굴껍질을 벗겨 마블링이 선명한 시뻘건 고깃덩어리 얼굴.
동그랗게 뜬 눈을 뜬 고깃덩어리같은 얼굴은 두려움이 없다. 정면을 바라보는 눈빛은 인간의 '오만함'을 주눅들게 한다.
지난 2009년 아트사이드에서 개인전을 연후 미술시장에 충격과 신선함을 동시에 선사하며 '무서운 그림'으로 떠올랐던 작가 한효석(43)의 작품이다.
당시 전시를 했던 아트사이드 이동재 사장도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다. "화랑서 이런 전시를 왜 하냐"며 관객들의 강렬한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 팔려나갔다. "베이징에서 전시할때인데, 홍콩,말레이시아등 컬렉터들이 구매를 하더군요. 한점도 안팔릴줄 알았는데 말이죠." 이후 이동재 사장은 기괴하고 오묘한 작업세계에 빠진 한효석 작가를 전폭 지원하며 함께 하고 있다.
사진같은 생생함. 하지만 오로지 유화로 그려낸 탄탄한 손맛도 압권이다. 이 작가, 도대체 왜 이런 작품을 하는걸까.
이런 의문도 가라앉기도전에 그는 더욱 강력한 충격요법의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 2009년 이후 5년만에 다시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에서 10일부터 8회 개인전을 여는 한효석 작가를 만났다.
"고깃덩어리로는 임팩트가 약하더라고요. 돼지(입체)로 강한 메시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소고기를 놓고 그렸던 얼굴그림과 달리 이번엔 돼지다. 전시장은 도살장같다. 어미돼지와 새끼돼지가 뒤엉키고, 두마리의 돼지가 나란히 붙어있는 '쌍 돼지'가 공중에 매달렸다. 진짜 돼지들같다. 실물크기 그대로, 축 늘어진 뱃살, 눈썹, 피부까지 완벽하다.
이 전시를 위해 5년간 힘을 쏟았다. 전북 정읍 양돈 농장에서 1년 반 체류하며 5000여마리의 돼지들과 살았다.
그곳에서 '자본주의 착취'를 실감했다. “돼지들이 새끼만 낳다가 죽은 뒤에야 정해진 공간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더군요."
돼지가 갇혀 사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 대량생산의 희생물이다.
"양돈농가에서 지내보니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더군요. 수입의 70%가 사료값, 10%가 약값 등으로 나갑니다. 그러다 보니 파산하는 곳이 많죠. 따지고 보면 양돈인들은 사료 회사나 제약회사에서 착취당하는 구조인 셈이죠. "
그는 사회주의자처럼 말을 쏟아냈다. "우리나라 양돈인들은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어요. 사육방식은 덴마크식인데 수입은 없고 빚만 쌓여가죠. 양돈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구조입니다."
'노동의 저주'가 달린 인간의 삶은 돼지의 일생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자본주의에서 '시간은 최고의 지배자'다. 그 '시간'에 굴복한, 돼지를 살려내기로 한 걸까.
'죽어서야 자유가 된' 돼지의 사체를 뜨기로 했다. 무게 350∼400㎏의 돼지사체들을 혼자 옮기며 돼지들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사체가 썩기전에 본을 떠야했다. 여름엔 부패가 빨랐다. 작업은 겨울에 이어졌다. 액체실리콘과 레진 유화물감은 죽은 돼지를 생생하게 다시 살려냈다.
이번 전시제목은 '자본론의 예언'으로 달았다. 군대에서 읽었던 앨빈토플러,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의 책을 독파했던 기억이 컸다.
예술은 차별화가 생명. 하지만 튀어도 너무 튄다. 왜 이런 혐오스러운 작업을 할까.
"혐오스럽다고요?. 작가는 객관화되는 순간 끝입니다. 이건 싫어, 이건 좋아라는 대중도 있겠죠. 하지만 그 인식 바뀌어야 합니다. 편식하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해야죠."
작가는 "예쁜 그림 인테리어소품같은 그림 작업은 하고 싶지않다"며 날선 목소리를 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면 예술의 독창성은 없어집니다. 앞으로도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올수 없는 걸 끌어오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싶은 작업을 하겠다는 이 작가, 대학시절부터 유명했다.
대학교 3학년때였다. 그가 화폭에 창자가 터진 흑인창녀를 그려내자 난리가 났다.학생들은 물론, 교수까지 수업에 안들어올정도였다. 획일화된 수업, 그리고 싶은 것도 못그리는 학교를 때려칠까 고민했다.
하지만 어떻게 들어온 학교인가. 소 돼지 농장을 하던 집안은 사료값 파동으로 파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을 하며 굴곡진 청춘을 보내고 군대까지 마치고 25살에 들어온 학교였다. 다행히 4학년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없는 우수상을 받으면서 전화위복이 됐다.
녹록치 않았던 생활, 사회주의 작가들에게 심취했던 그는 어떻게 그림을 시작했을까.
6살 무렵이었다. 혼자놀던 그는 액자공장에서 놀았다. 이발소 그림을 납품하던 곳이었다. "그때는 오락거리가 없었어요.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동네형들과 어울렸죠. 끈적끈적한 붓과 물감을 가지고 놀았는데 어느날 동네형 짐자전거에 실려 이발소그림을 그리는 화방에 갔어요. 거기서 그림그리는 아저씨들을 봤는데 놀라웠어요. 초등학교도 안나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림을 정말 잘 그리더라고요. 초등학교때까지 거길 들락날락하면서 그림을 그리면 '잘그린다'고 칭찬했지만, 배곯고 산다고 미술을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경기 평택 미군기지근처에서 살았던 유년시절은 그를 지배하고 있다. 집창촌 여성들의 삶과, 인종차별, 빈부문제는 어린시절부터 늘 봐왔던 '불편한 진실'이었다. 미술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 이야기를 하고싶었다.
'정육점의 육질'로 만들어버린 무서운 그림에는 그의 철학이 깔렸다. “5㎜만 벗겨내면 사람이나 동물, 그리고 백인종이나 흑인종이나 황인종이나 모두가 똑같지 않나요?".
'인생의 환상'은 버리고 '냉철한 현실주의'로 무장한 그는 평론가들에게도 쓴소리를 날렸다.
"서양의 담론으로, 서양의 사고로 해석하려 하지말라. 들뢰즈나 라캉을 들먹이며 서양미술입장에서 쓰는 평은 문화식민지로 기어들어가는 밖에 안된다."
앞으로 "인체를 해부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담론을 만들고 내가 이즘을 만들어 끌고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영국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작품 '노예선'도 처음에 전시할땐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았죠.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영국에서 안파는 작품입니다. 보물이 된거죠."
전시는 5월 1일까지. 돼지 입체 4점, 평면 회화 6점을 선보인다. 웃(기고 슬)픈 돼지입체와 달리, 살코기 얼굴그림은 노약자 및 임산부는 심사숙고해봐야 하는 전시다. (02)725-1020
◆한효석=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회화과를 2002년 졸업했다. 개인전 7회. 2014 대만국립현대미술관 대규모 단체전에 초대됐다. 1999년 중앙미술대전, 2003년 송은미술대상, 200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에서 수상. 2012년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로 선정.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구상미술관, 국립전라북도교육박물관, 제일병원, 인천공항월드게이트빌딩, 삼성물산 등과 독일, 미국, 일본 등의 개인 소장가들에 의해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