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길들여짐과 소통

2014-02-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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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춘석 여주시장)


김춘석 여주시장

어린 왕자라는 책이 있다. 아이들 동화 같기도 하면서 제법 심오한 내용으로 어른들도 읽어 보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요즘엔 책의 종류도 다양해 전문 성우들이 책을 녹음해 소리로 들려주는 오디오 북이라는 게 있다. 얼마 전 집에 온 며느리가 안아 달라고 보채는 손녀에게 이 책을 오디오 북으로 들려주며 달래고 있는 것을 봤다.

이제 갓 4살 난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는 할까 궁금했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신기한 음악소리와 앳된 어린 왕자의 목소리에 마냥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이 신통할 뿐이었다. 내 자식 어렸을 때보다 손자·손녀가 훨씬 더 예뻐 보인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암튼 손녀 옆에서 무심코 듣고 있자니 마치 아이가 모든 어른들에게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하고 훈계하는 것 같았다.

책 첫 머리부터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해 못하는 어른들의 무심함과 아이의 친구를 부모의 소득과 집 크기로만 평가하는 어른들의 편협함을 꾸짖는다. 그래서 지은이는 말한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자신이 될 어른들을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고.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어딘지 뜨끔함이 느껴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책 속의 ‘어른’에서 비껴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지구에 도착하기 전 어린 왕자가 별들을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각각의 삶이 우리 어른들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그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주정뱅이, 은행에 저축해서라도 세상 모든 별들을 혼자 다 갖겠다던 탐욕스런 상인, 숭배 받기만을 바라는 허영꾼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의 자아상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우와 어린왕자의 만남 부분이다. 지구에 친구가 없어 외로웠던 그는 여우에게 친구가 돼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여우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만다. 대신 시간과 노력을 들여 특별한 관계를 만들고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될 때, 다시 말하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졌을 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으로 그 소중함을 볼 줄 알아야 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우가 읽어주는 책이 다 끝나고 손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문득 아이가 나를 길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과 길거리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손녀가 보고 싶어진다. 매 주말이면 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니 길이 들어도 단단히 들은 모양이다.

나는 소통도 길들여짐과 길들임이라고 믿는다. 여우와 어린왕자가, 나와 손녀가 그러하듯 서로 일방적이지 않고 상대방의 몸짓 하나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곁에 있지 않아도 기다림 그 자체가 즐겁다.

상대방과 말이 안 통한다고, 꽉 막혔다고 불평하지 말자. 진정 소통을 원한다면 누군가에게 나를 길들여 달라고 말해 보자. 어린왕자에 길들여진 여우가 그전엔 아무 의미가 없던 금빛 밀밭을 보고 어린 왕자의 노란 머릿결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 누군가는 길들여짐으로 나의 진심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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