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육군의 차세대 전차인 ‘K2’(일명 흑표)의 ‘파워팩’ 국산화가 지연되자 이 기술을 한국에서 도입하기로 했던 터키가 기다리지 못하고 일본과 손을 잡았다.
일본과 공동개발한 파워팩은 한국의 기술을 이전받아 터키가 개발한 전차에 얹어질 전망인데, 이 과정에서 자칫 한국의 전차 개발 기술이 일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어, 국민의 혈세를 들여 자주국방을 위해 개발한 국산 기술을 정부가 스스로 유출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파워팩은 엔진과 변속기(트랜스미션)를 합쳐서 세트로 만든 것으로, 분리됐을 때에 비해 신속한 정비와 장비 교체가 가능해 전쟁시 전차의 운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독일과 미국, 일본 등 소수의 국가만 보유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기술인 파워팩은 K1과 K1A1 등 기존 한국의 주력전차에는 이 분야 최대기업인 독일 MTU의 것을 사용해 왔으나 고가인데다가 정비 기간이 길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자 국방부가 독자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터키의 차기 전차 ‘알타이’는 지난 2008년 한국과 터키 양국 간 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이 기술을 이전해 개발했다. 당시 현대로템과 터키 오토카는 계약을 통해 2015년 4월까지 터키의 차세대 전차 개발을 추진해 200여 대를 양산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 K2 개발 과정에서 얻은 기술을 터키에 이전해 차세대 전차 개발을 지원하는 한편 K2 전차의 전력화가 이뤄지는 데로 터키 측에 수출키로 했다. 기술 이전에 따른 로열티 수익과 K2전차 수출을 포함해 총 4억 달러의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핵심 장비인 파워팩의 국산화가 4년여 가까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K2 전차의 전력화는 또다시 미뤄지면서 문제는 꼬이기 시작했다.
현대로템이 전차 완제품 생산을 맡은 K2 전차는 변속기는 S&T중공업이, 엔진은 두산인프라코어가 개발을 맡아 1500마력급 파워팩을 개발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개별 제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도 이를 하나로 합치면 계속 불량이 발생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파워팩 개발이 늦어지면서 지난 2009년에 체제 개발을 완료한 K2 전차는 결국 초도 생산 물량 100대에 MTU의 파워팩을 얹기로 결정해 올해부터 전력화가 이뤄진다.
파워팩 개발 지연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 2011년 터키 정부 측은 당초 약속대로 한국 측이 기술 이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협력 중단 의사를 전달해 당사자인 방위사업청과 현대로템이 발칵 뒤집어진 바 있다. 계약서상에 파워팩, 전차궤도 제어장치(ISU) 등 정부의 별도 승인이 필요한 핵심 기술을 터키 측이 요청하면 이전을 해줘야 한다는 내용을 뒤늦게 파악한 정부가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터키 측에 전하면서 관계가 틀어진 것이다.
가까스로 이해를 구해 일단락됐지만, 앙금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터키는 한국이 이전한 기술을 적용해 알타이를 개발했다. 이 전차에는 MTU의 파워팩이 적용돼 조기 전력화가 가능했다.
터키는 알타이 전차 개발을 완료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5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20억 달러 상당의 알타이 전차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이라크에 FA-50을 수출하면서 갱신한 최근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금액인 11억 달러보다도 2배 가까이 큰 금액이다.
여기에 터키 정부는 파워팩 기술 획득을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았다. 당초대로라면 한국의 기술 또는 파워팩을 수입해야 했지만 개발이 늦어지면서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이다. 사실상 한국의 파워팩 독자개발에 대해 터키 정부가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자국 주력전차에 파워팩을 공급한 바 있으며 터키가 원하는 1500마력급 파워팩 개발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일본과의 협력으로 개발한 파워팩을 알타이 전차에 적용할 예정이다.
파워팩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것과 별개로, 터키와 일본 간 파워팩 공동개발이 진행될 경우 알타이 전차에 적용된 한국의 전차 개발 기술이 고스란히 일본 측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과대한 우려라고 볼 수 있으나 파워팩을 개발하려면 알타이 전차의 설계와 구조를 알아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 육군의 주력 전차인 K1, K1A1은 물론 차기 주력전차인 K2에 쓰인 기술을 일본 기업이 합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