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권경렬 기자 = "내 집값이 떨어진다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솔직히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한다." (최모씨·서울 목동)
세대수 대폭 축소 등 사실상 반토막난 행복주택사업의 시범사업지구가 지정됐지만 여전히 해당 지역 주민들은 행정소송은 물론 대정부 투쟁까지 언급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교통·교육 등 주거환경 악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핵심이어서 막무가내식 님비현상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목동행복주택 건립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주민 의견수렴을 한다면서 전혀 설득작업 없이 날치기로 지구지정을 강행했다"며 "지구지정 취소 가처분신청 등 행정절차를 밟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목동에 20여년간 거주했다는 이모씨(44)는 "기본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문제"라며 "신혼부부 등 젊은 계층 위주로 입주한다고는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입주자들이 어떤 계층으로 바뀔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동지구 주민들의 경우 행복주택 건립 반대 명분으로 교통 및 교육 문제를 내세우고 있다.
행복주택 예정지구인 목동 빗물펌프장 인근은 상습 교통정체 구간이다. 현대백화점이 바로 맞은편에 있고 하이페리온, 트라팰리스 등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몰려 있다. 목동 및 신정동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도심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주요 길목이기도 하다.
또 현재 목동 인근의 일부 초·중학교는 높이가 9층에 달하는데도 교실이 부족할 정도로 학급 과밀화 현상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목동의 집값을 떠받치는 주요 요인은 역시 '학군'이라는 점에서 정작 반대 주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임대주택이 들어선 이후 일대 학군의 질적 저하에 따른 집값 하락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역시 유수지인 송파·잠실지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송파지구의 경우 인근 재건축단지인 가락시영 조합원들의 반대가 심하다. 이들 역시 교통과 기반시설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재건축 후의 기반시설을 행복주택 주민들과 함께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행복주택 반대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데에는 해당 지자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인기영합식 '표밭관리'가 크게 한몫 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행복주택 등 임대주택 문제는 국가적인 큰 틀에서 봐야 하는데도 지역 행정가나 위정자들이 지나치게 주민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정부가 지자체장에게 행복주택 입주민을 선정하도록 발표했는데, 입주민들도 지역구 주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반대주민들이 되레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행복주택 시범지구 주민들과 300여차례 접촉했지만 대안 없는 반대만 하고 있다"며 "정책 후퇴라는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행복주택 규모를 축소하고, 안전문제 및 교통·교육에 대한 대안도 내놓았지만 여전히 귀를 닫고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국토부는 주민 의견에 따라 행복주택 공급계획을 당초 전국 20만가구에서 14만가구로 줄이고 시범지구 7곳의 가구수도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입주자 계층도 신혼부부 및 대학생 등 청년계층의 비율을 기존 60%에서 80%까지 높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학급 과밀화를 반대 이유로 들고 있지만 입주민의 80%에 해당하는 신혼부부 및 대학생들의 자녀가 취학아동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결국 행복주택지구 지역 주민들의 반대 이유는 집값 하락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만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주민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역 비대위 관계자는 "반대를 주도하는 이들은 물리력까지 행사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정부가 이 정도까지 나온다면 결국 행복주택 건립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목동에서 만난 주민 김모(36)씨는 "목동·신정동 일대에서 행복주택을 반대하는 이들은 세입자가 아니라 집값이 비싼 목1동과 신정2동 중심의 집주인들"이라며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젊은 세대의 임대주택을 짓지 말라는 것은 극심한 이기주의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