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승훈 기자=경부선, 경원선 철도가 교차하면서 전자가전제품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선 곳. 한남로를 따라 미군과 외국인을 상대로 한 독특한 겉모습의 점포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이촌동을 중심으로 대단지 아파트가, 한남동 일부에는 고급 주택가도 눈에 띄인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 불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바로 용산구의 오늘의 모습이다.
성장현(58) 용산구청장의 교육에 대한 욕심을 알 수있는 일성이다. 평소에 악기 하나를 잘 다루고, 운동 한 종목에라도 소질을 살리라고 미래 꿈나무들에게 주문한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취임 당시 총 100억원을 목표로 한 '꿈나무 장학금' 기금 조성을 약속했다.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가까운 지인들은 실현이 힘들 수 있다며 거듭 만류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푼 두푼 쌈짓돈이 모여 구 출연금으로만 25억원까지 불어났다. 올해 이자 수익금으로 거둔 9600만원이 첫 장학금에 쓰일 예정이다. 당연히 구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다. 금액적으로 최종 목표에는 아직 모자라지만 소정의 결실을 거뒀다. 당장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원봉사 우수자, 예체능 특기자 등 수혜 범위를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우수한 외국어 교육환경은 용산의 자랑거리다. 월 2만원의 수강료만 내면 원어민 수업에 참여하고 외국문화원과 대사관 등 관련 인프라를 경험할 수 있다. 3~6학년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는 영어,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베트남어 등 6개국 언어를 가르친다. 성인들을 위한 교실도 열린다. 2010년 문을 연 '청파·용암 어린이 영어도서관'은 어린 자녀에게 체계적 영어 독서습관을 길러준다.
성 청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관내 아이들은 적어도 2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얘기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들은 미래 용산을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의 이전 확정은 명실상부한 교육 중심으로 본격 날갯짓하는 청신호가 켜진 셈"이라고 반겼다.
교육에 대한 성 청장의 열의를 한층 불태우는 소식이 얼마 전 들려왔다. 서울시교육청과 용산구가 '청사 이전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시 교육청이 종로구 신문로에 자리한 낡고 협소한 청사를 떠나 후암동 일대 옛 수도여고 부지에 새 둥지를 튼다는 내용이다. 도시관리계획을 심의하는 자치구가 부지 용도를 변경하기 원하는 공공기관에 적극 협조하고, 교육기관은 관할 자치구의 교육 수준 향상에 행·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윈윈(win-win) 거래'인 것이다.
지역의 고질적 현안에 대해 성 청장은 "경부선 철도로 인해 동서가 갈려 오랫동안 사회·문화적 단절이 심각하다"며 "또 철도변 개발 제한으로 현지 주민들의 삶은 더욱 열악해졌고 소음과 진동에 매일 시달린다"고 말했다.
현지 철도는 1905년에 개통돼 100년이 넘도록 구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다. 이는 지역간 균형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철도로 나눠져 동서를 연결 중인 신용산·갈월지하차도 등 지하도로 4개소와 고가도로 2개소는 교통 체증이 극심하다. 뿐만 아니라 한강로 일대로는 도심 재개발이 한창이다. 성 청장은 취임 직후부터 철도 지하화를 조속하게 시행해 줄 것을 국토해양부와 서울시에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지난해 '경부선 철도 지하화 촉구 서명운동'을 펼칠 당시 전면에 나서기도 했고 2011년 용산구 중장기 발전과제로 다뤘다.
"행정이란 일관성, 연속성이 있어야 하고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구정 패러다임이 변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지역발전에 대한 중장기적 마스터플랜 안에서 현재의 행정 책임자는 아이디어를 보태고 정책을 펼칠 뿐입니다."
선출직인 구청장과 구정의 평균 수명이 동일하다는 것은 곧 행정력 낭비로 직결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연장선에서 1년전 서울의 자치구 중 유일하게 외부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2030년까지 장기비전이 담긴 종합발전계획을 펴냈다.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과 앞으로의 국내·외 각종 변수를 회의 테이블에 올려 지속가능한 성장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이를 통해 '창조산업과 인재가 모이는 세계무대의 중심지',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녹색자연 환경지', '사람중심의 행복한 도시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성 청장에게는 '소통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수식어처럼 따른다. 매주 한 차례 열어온 구민과의 만남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은 구청장 집무실이 활짝 열린다. 어르신들의 가려운 곳부터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까지 동네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정겹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최근 들어서는 성 청장이 몸소 민생으로 뛰어든다. 구민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진 탓이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도록 골목 곳곳을 누빈다. 반상회가 열리면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리를 꿰차고 앉아 대화에 끼어든다고 한다.
올해는 대화 방식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성 청장이 아이디어를 낸 '가가호호 행정서비스, 반장에게 듣습니다'가 운영된다. 성 청장은 "생생한 구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이 원하는 정책을 구정에 반영하겠다는 의미"라면서 "행정에 어떤 장벽이 존재한다면 과감하게 이를 허물어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좌우명은 '태산같이 공덕을 쌓아도 한 가지 청렴한 것만 같지 못하다'는 뜻의 '태산공덕불여일청렴(泰山功德不如一淸廉)'. 전남 순천 출신으로 안양대 행정학과를 나와 동국대와 단국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용산구의원을 거쳐 민선2기 용산구청장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