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가열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열풍에 대한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일침이다.
현 원장은 “경제민주화의 기본정신은 공정한 경쟁“이라고 강조한 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의도한 바와 달리 반 기업 정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향후 경기 흐름에 대해 “‘V’자, ‘L’자도 아닌 ‘소문자 필기체 b’자 형태의 끝자락에 가까울 것”이라고 전망한 뒤 “이는 경기 회복 속도가 미미한 상승, 정체, 하강 이후 다시 미미한 상승을 반복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조정이 이루지면 그때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 원장은 지난 13일 서울 홍릉에 위치한 KDI 원장실에서 창간 5주년을 맞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경제민주화 등 최근의 경제이슈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재벌 딸이 빵집 한다?..정서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아
현 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정서적 차원이 아닌 공정한 경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본질을 흐려서는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최근 불거졌던 ‘재벌 딸의 빵집 사업’ 문제와 관련해 “재벌 딸인데 빵집까지 운영한다는 감정적 인식보다는 그것이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하지 않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현 원장은 “A라는 사람을 채용하면 회사가 더 잘 될 텐데 B라는 재벌 딸이 들어와 회사에 피해를 줬다면 회사차원에서 배임으로 볼 수 있지만, 업종에 따라 재벌 딸이 운영해도 되고 안 된다는 시각은 경제적인 접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인척관계의 사람을 쓰는 것은 회사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일종의 공정한 경쟁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일반적인 정서적 차원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현 원장은 내부자거래, 일감몰아주기 등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보호위주보다는 자생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호위주의 정책은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 원장은 “경쟁력에 입각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하느냐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경제선진화로써 공정경쟁이 자유경제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는 것이다.
◇“저부담 고복지는 불가능..빚 감당 의지 필요”
현 원장은 아직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에 대한 낮은 인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저부담, 저복지가 있고 고부담, 고복지가 있는데 나라 경제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조사 결과 저부담 고복지를 원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며 빚 감당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 원장은 복지의 우선 과제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현행 복지제도의 비효율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 새는 돈을 막는 것이 첫 번째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또 새로운 복지재원을 만들 때 복지 혜택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빈곤층, 4대 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지 혜택이 잘 분배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추가적인 복지 수요에 대한 재원 확보 방안으로 “근로자의 40%가 혜택을 받고 있는 비과세 감면 혜택 등을 없애고 난 뒤 증세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 원장은 또 통일에 대비한 재정을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늘 통일 비용은 감내한다고 생각하고 재정을 비축해야 하는데 통일을 먼 나라 일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북한의 GDP가 1000달러로 우리의 2만 달러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에 있어 북한 전체가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기초생활보장비로 지출되는 비용만 9조원(지방비 포함)인데 통일이 되면 그 10배인 90조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 원장은 “복지는 한번 실행하면 다시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정을 보수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MB정부 “위기 극복하느라 노력 했지만 중장기적 시각 부족”
현 원장은 지금 시점에서 MB정부를 플러스(+), 마이너스(-)가 아닌 곱셈(x)으로 평가했다. 하나를 잘해도 하나를 잘못하면 ‘0’이 된다는 의미다.
그는 MB정부에 대해 “리먼사태와 세계 경제 침체 등 외부적 요인으로 힘들었던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현 원장은 “MB정부가 위기극복을 하느라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다는 점과 글로벌한 시각에서 최근 녹색기후기금(GCF) 유치 등의 성과는 인정해줘야 한다”면서도 “다만 더 넓게 보고 전략을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말했다. 하나하나 세부적인 것을 먼저 보고 전체를 보려고 하니 중장기적으로는 아쉽다는 평가다.
현 원장은 다음 정부에 바라는 점으로 현재 한국이 전 세계 무대에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바라봐 줄 것과 일자리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는 이제 우리나라가 글로벌 무대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 정책 자체도 글로벌한 면을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리더십의 위상에 걸맞은 시각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일자리가 국민을 위한 가장 큰 복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일자리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시간이 걸리고 당장은 피부에 와 닿지 않더라도 이것이 미래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현금을 나눠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갖출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고 설명했다.
◇“올해보다 내년 좋아질 것..당장은 힘들어”
현 원장은 경제 성장률 전망과 관련해 “그동안‘상저하고’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이제 그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꺾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IMF 등 대부분의 경제전망기관들이 올해보다 내년 경제성장률을 더 높게 보고 있다”면서 “그런 추세를 받아는 들이지만 그렇게 빨리 좋아질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경제지표를 그려보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V’자, ‘L’자, ‘나이키’가 아닌 필기체 소문자 ‘b’자 형태가 아닌가 싶다”며 “지금은 ‘b’자의 연이은 끝자락 중간단계에 있는 게 아닐까”라고 진단했다.
또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지속됨에 따라 더 이상 수출에만 의존해서는 경기 회복력이 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14.8% 증가세를 보였는데 올해 1~9월까지 -2.0% 라는 점은 우리 측에서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수출 중 80%는 반제품 부품이나 부품이기 때문에 중국이 수출이 잘돼야 우리도 잘되는 등 영향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경제전문가들이 성장률 전망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정책효과가 배운 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 원장은 “돈을 많이 풀면 이에 따라 수요가 생기고 경기가 진작 돼야 정석인데 모든 분야에 빚이 있는 등 부채 조정 과정이 있기 때문에 돈을 풀어도 빚 갚는데 쓰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 전망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담= 이상준 부국장/경제부장겸 총괄뉴스부장, 정리=유지승, 김정우 기자, 사진= 남궁진웅 기자
<프로필> 현오석 KDI 원장
▲1950년 충북 청주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1989~1991 세계은행(WB) 이코노미스트 ▲1996~1999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예산심의관, 세무대학장 外 ▲2002~2008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2008년 공공기관(공기업ㆍ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장 ▲2008~2009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2012.6~현재 세계은행 지식자문위원회(KAC) 초대 자문위원 ▲2009~현재 한국개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