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유통업체들의 진짜 고민

2012-07-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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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유통중기부장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통업태인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문제가 생겼다. 소비의 최정점에서 승승장구하던 백화점이 위협을 느낄 정도면 우리나라 유통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달 백화점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했다. 대형마트는 소비부진에 강제휴무·영업시간 제한까지 겹쳐 4월 이후 3개월 연속 매출이 줄었다. 3개월 연속은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업체들은 가뜩이나 소비도 부진한데 규제까지 더해지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과연 소비 불황과 규제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혹시 유통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것을 이들은 감지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유통업체들도 이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평생 화두인 '10년 후 먹을거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가 됐다.

시골 점방 수준의 점포들이 득세했던 1980~90년대에 체인스토어의 등장은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이었다. 체인스토어는 체인 본사가 전국의 동네 슈퍼마켓에 물건을 공급하는 형태다. 본사가 주류·과자·음료·생필품 등을 구매했기 때문에 체인점 숫자가 증가할수록 막강한 바잉파워를 가질 수 있었다. 일종의 공동구매 형태였고, 그 힘이야 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그러던 체인스토어도 90년대 후반 할인점이 생기면서 단숨에 정리됐다. 소비자들은 할인점의 쾌적한 쇼핑환경에 환호했고, 몇몇 최저가 상품들은 고객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몇 년 동안 할인점이 득세를 했지만 말 그대로 '할인하는 점포'였기에 본사 마진이 매우 박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가치점'이다.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가치를 판다며 백화점 수준의 쇼핑환경을 제공했다. 물론 가격도 함께 올랐다. 가치점은 백화점도, 할인점도 아닌 애매모호한 중간 성격의 업태였다. 그래서 불리게 된 명칭이 바로 '대형마트'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카테고리 킬러, 우리말로 풀이하면 '마트의 카테고리를 죽이고 밖으로 탈출한 업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식 명칭은 전문점이다. 드럭스토어·토이저러스·ABC마트 등으로 대변되는 전문점들은 단일 제품에 대해 강력한 바잉파워를 앞세워 마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소비자들도 일정 제품에 대해서는 마트보다 전문점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요즘 대형마트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공산품과 가공식품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대형마트들이 식품관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최근 대형마트의 부진은 그들의 주장대로 불황이 전적인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급변한 유통환경에서도 명품과 고급을 앞세운 백화점은 나름대로의 영역을 확고히 지켰다. 대형마트와 철저하게 차별화하면서 승승장구해 왔지만 '온라인'에 대해서만큼은 대비가 미흡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읽어내지 못한 탓이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대형마트는 전문점, 백화점은 온라인 등 새로운 유통채널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유통 전문가를 만나면 항상 묻는 말이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이후에 다가올 업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에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한 사람은 없다. 유통업체 최고위 관계자들도 즉답을 피했다. 이는 우리나라 유통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다.

소비자들은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 과거 백화점에서만 사던 명품을 이제는 면세점·온라인 전문몰·백화점 등 3개 이상의 채널을 놓고 비교하고 있다. 조건만 맞으면 해외에서도 직접 공수한다.

국내 유통업체들도 똑똑해진 소비자들에게 과거의 잣대만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최근의 매출부진이 과연 소비불황과 규제 때문인지, 아니면 스마트해진 소비자들의 성향을 유통업체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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