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부터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70회 개인전을 연 이두식 화백이 흑백과 여백이 많은 신작 잔칫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제공=선화랑>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그는 최근 간송미술관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전통화라고만 여기며 대충봤는데 이번엔 달랐다. ‘풍악내산총람'등 겸재와 단원의 그림을 자세히 봤다. 거대한 절경들을 압축한 장엄함과 호방한 필치의 선의 미학을 보며 뜨금했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지도를 못한게 아쉽기도 했다. 우리가 수천년을 가져온 예술정신이 서양적 시각에 휘둘리는 것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야할때라고 했다.
서양화가 이두식(66.홍익대)교수의 그림이 달라졌다. 그는 “선(線)을 중시하는 동양미술과 면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미술의 차이를 이해함과 동시에 서양에서 시작된 추상화가 동양적 수묵화의 개념과 같은 맥락임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추상적인 서양화를 하지만 동양적 정신세계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다.
"물론 그동안 오방색 잔칫날에서 수묵쪽으로 변한 흑백으로 작업으로 '심상'시리즈를 내놓기도 했죠. 하지만 이번엔 그리다 만것 같은 종이위에 드로잉개념으로 수묵화 정신을 녹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잔칫날 (Festival) Acrylic on canvas 162.2 x 130.3 cm 2012 |
◆ 70회 개인전은 선화랑 고 김회장과 마지막 약속
"고운 여사님이셨지요. 미술인들이 보기에 좋은 화랑이었어요. 자꾸 바깥으로 나돌지 말고 한국에서 한번 전시하자 약속했는데…."
지난해 돌아가신 김회장과의 약속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선화랑를 일군 고 김회장의 유언같은 전시다. 생전 마지막으로 병원에 누워 이교수와 전시를 열자고 약속했고, 김 회장은 이 교수의 작품을 선화랑 달력으로 위해 매일 이교수의 작품을 보고 있다가 별세했다.
인사동 터줏대감이었던 선화랑 김회장과 인연은 24년전에 이어졌다.
선화랑이 매년 젊은 작가들을 발굴 지원하는 '선미술상'에 선정되면서다. 88년 제 5회 선미술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선화랑의 애경사에 참석하며 의리를 지켜왔고, 늘 후원을 잃지 않았던 김 회장의 마지막 기획전의 주인공이 됐다.
매년 전시를 여는 그의 개인전 횟수는 벌써 70여회. 전시때마다, '또?!'라는 소리가 나올정도다.
수많은 그룹전과 개인전으로 그의 작품은 이미 대중화된지 오래다.
"하하. 친구들이 이두식이는 짜장면 화가라고 합니다.강남 유명한 중식당에 제 그림이 걸려있는 걸보고 하는 소리죠.”
한집건너 한집에 걸려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정도로 '희귀품'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60이 넘어가면 작품에 몰두하는 작가들이 많지 않아요. 만점의 작품을 그린다는 목표로 늘 작업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4500여점을 발표했다.
잔칫날(Festival) Acrylic on canvas 116.8x72.7cm 2012. |
◆오방색 화려한 '잔칫날' 우울증도 치료
그의 오방색이 팡팡튀는 화려한 '잔칫날' 작품은 단연 인기다. 이교수의 트레이드마크인 '잔칫날'은 '기가 세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88년 발표 당시엔 '미친놈색'으로 불리기도 했다. 흑백TV 시대에서 칼라TV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또 미술계에서는 '앵포르멜'유행으로 흰색과 단색으로만 작업하던 '색채가 죽은 시대'였다.
성황당에 걸린 울긋불긋 헝겊들이 나부끼듯 색채의 팡파르를 울린 '미친놈색' '잔칫날'은 이두식을 스타작가로 발돋움시켰다.
40년이 넘게 천착하고 있는 '잔칫날'은 그에게 매번 잔칫날을 선사했다. 특히 동양사상이 우위인 중국에서 대접이 남달랐다.
2002년 베이징 올림픽에 처음으로 자금성 내 미술관에 출품하면서 중국에 알려져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중국국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영예를 안았다.2008년엔 상하이 정부로부터 10년동안 무상으로 쓸수 있는 아틀리에를 받았다. 2009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루쉰미술대학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해 금일미술관서 연 초대전에는 동양의 사상으로 강조한 한국의 추상세계를 알리는데 기여했다. 2010년 한중 미술교류 증진에 힘써온 이 교수는 외국인 전문가 영예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한중수교 19주년 기념 베이징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베이징미술관에서 새롭게 선보인 변화된 작품 '심상'시리즈로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청적황백흑의 화려한 오방색이 가득한 제 작품은 잔칫날 누군가는 꽹과리를 들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들과 그 환희를 2차원 평면에 환원한 작업입니다. 그래서인지 보는사람들에게 신명과 흥을 북돋아준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실제로 우울증에 걸린 남편이 이교수의 작품을 보고 환하게 웃게됐다며 그림을 주문하기도 하고, 집안에 걸어놓으면 분위기가 활기차다는 컬렉터들이 많다.
'잔칫날 그림' 엔 액자 유리가 없다. 유명한 기 치료사가 이교수의 그림을 보고는 그림 자체에서 좋은 기가 흘러나오는데 왜 유리판으로 막았냐며 유리판을 떼라"고 했다는 것. 그때부터 작품을 덮는 유리를 없앴다.
그는 그림에 좋은 기(氣)를 담기 위해 스스로를 정화하는 것을 40여년간 철칙으로 지키고 있다.
"언짢은 기분, 술을 마신 상태, 몸이 아프거나 불쾌하면 절대 붓을 들지 않습니다. 잔칫날을 그릴땐 모든 일을 끝내고 정신이 맑은 새벽에 꼭 명상을 한후에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래야 제 그림을 보는 감상자들도 좋은 기분과 영감을 받을것 아닙니까." 전시는 6월 12일까지.(02)734-0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