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정상회의 결과 FTA협상이 곧바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양국 정부는 각자의 국내외 정치·경제적 요건에 대한 셈법으로 일정기간 장고에 돌입한 상황이다.
◆ 여론 눈치보는 정치권 장고 돌입
국내 정치권의 경우 이미 체결된 한미FTA 대책에도 명확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한중FTA에 대한 고민까지 추가로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특히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라는 대형 선거까지 맞물린 실정이어서 FTA에 대한 정치권의 부담이 커져가고 있다.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과의 FTA는 선진국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발판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에 기초경제가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는 넘지 못할 벽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국의 농업부문과 경공업부문의 개방이 우리경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모습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08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중 FTA로 우리나라는 섬유(8.85%), 철강(1.46%), 자동차(5.16%)에서 수출증가가 예상되는 반면, 농수산업(-14.2%)과 기타 운송장비(-5.28%), 가공식품(-2.58%), 의류(-1.47%) 등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과 수산업 부분에서 한중 FTA 체결 이후 최대 3조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피해가 예상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중국과의 FTA협상을 진행하되 농업분야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상황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등 협상과정에서의 정부역할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 중국이 경계하는 TPP를 이용하라
한중FTA 협상에서의 주요 관심사는 양국간 민간분야의 처리방향이다.
일단 대부분의 산업에서 양적 우위에 있는 중국측은 느긋한 반면, 우리측은 농업부문에 대한 취약품목 인정 등의 해결책을 협상의 최우선 과제로 보고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능한한 빨리 FTA를 개시하자는 의견을 전달한 반면, 이 대통령은 FTA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국내 절차를 우선 밟고 시작하자는 뜻을 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적극적으로 협상테이블에 나올 중국에 대응해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 필요한데, 최근 중국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그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TPP는 미국의 주도하에 일본이 참여하면서 미일FTA와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한중FTA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중국은 TPP에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것을 두고 여러차례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동안 중국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세안+한중일 등 동아시아 중심의 경제협력을 추진해 왔는데,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이 포함된 TPP에 미국이 발을 들인데 이어 지난해 말 일본까지 공식적인 참여를 선언하면서 TPP가 중국을 따돌린 경제협력체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1위와 3위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이 참여한 TPP는 GDP 22조3000억달러 규모로 전 세계 GDP 비중의 35.3%를 차지하는 세계 제1의 지역무역협정으로 자리잡게 된다.
유로존 위기로 붕괴불안을 겪고 있는 유럽연합(EU) 16조2000억달러를 훨씬 넘어서는 규모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세계적인 통상주도권도 강화하기 위해 TPP를 추진했고,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함과 동시에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TPP참여를 선언했다.
중국이 최근 한중FTA를 서두르고,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TPP를 경계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TPP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TPP로 중국을 압박함과 동시에 중국과의 FTA로 TPP를 견제할수도 있는 양수겸장의 수단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