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일제 강점기 신민회 등 계몽운동에 헌신했던 이갑(1877.5∼1917.6) 선생을 2012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평남 숙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상동교회 청년회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 주요 인사들과 교류했다. 1896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하면서 정치현실과 자강의식에 관심을 가졌다.
재산을 털어 서북학회 조직을 지원하고 오성학교를 건립했으며 다른 군인출신 애국지사와 함께 신민회 활동에 참여했다.
선생은 군부 교육국 교무과장을 지내던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이 일어나자 황제 폐위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 뒤에는 일본 육사 출신 군인 유동열, 김희선, 노백린 등과 함께 군대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
1910년 신민회 인사와 함께 망명한 선생은 러시아 외교관, 정치관과 교류하고 현지에 한인 청년 양성소를 만드는 등 독립운동 기지 개척에 힘쓰다 니콜리스크에서 41세의 나이로 숨졌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